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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고독한 영웅’ 창출/홍콩 느와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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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고독한 영웅’ 창출/홍콩 느와르론

입력
1997.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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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반영 비현실적 상황설정/오우삼 감독 주윤발 장국영 등 대표적주상복합식 아파트, 많은 인구, 불안한 미래. 홍콩에서 극장은 이런 후텁지근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공간이다. 인도와 대만인들이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서구인들에게 영화가 레저의 대용물이라면 홍콩인들에게 영화는 생활 혹은 희망이다.

7월1일 중국에의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에게 영화는 그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늘 떠날 준비가 돼 있는 홍콩인들에게 잊지 말아야 할 하나의 족보다. 이소룡의 「정무문」, 서극의 「촉산」 「천녀유혼」, 성룡의 코미디 영화, 관금붕의 예술영화와 왕가위의 스타일 영화. 더불어 그 족보에는 「홍콩 느와르」가 빠지지 않을 일이다.

홍콩 느와르의 어원은 확실치 않다. 「영웅본색」을 배급한 일본의 영화사가 광고카피에 처음 이 말을 사용했다는 설과 우리나라 영화 저널리스트들이 처음 쓰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있다. 명확한 사실은 이 말의 국적이 홍콩이 아니며 「우먼 느와르」 「한국적 느와르」 등 다양한 변종을 낳았다는 것이다.

홍콩 느와르라는 단어의 뿌리는 물론 2차대전 후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던 영화 장르 「느와르」(Noir, 「검다」는 뜻). 프랑스의 느와르는 도시 범죄집단의 정글 속에서 표류하는 전후 젊은이들의 패배주의와 우울을 나타냈다. 반면 홍콩의 느와르는 이와 맥락이 비슷하지만 홍콩의 불안한 미래와 홍콩영화의 특성을 배합해 프랑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서 홍콩적 특성이란 호금전 감독의 「용문의 결투」, 장철 감독의 「외팔이」 시리즈, 배우 이소룡의 「당산대형」 「용쟁호투」로 대별되는 무술 영화에서 무술을 빼고 남는 그 무엇. 그것은 영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시련, 그리고 그들의 끈적한 우정 등이다.

홍콩 느와르의 요체인 우울한 영웅, 영웅의 우울함을 그리는 방식은 지극히 홍콩적이다. 때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브라이언 드 팔마의 「언터처블」같은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이 들어있다. 「잡종(하이브리드)문화」라고 할까. 광동어와 영어가 혼재하는 공간, 유교적 전통과 자본주의적 화려함이 깃든 홍콩의 정서와도 흡사하다.

이소룡의 쌍절곤 대신 영웅은 기관총을 쏘아댄다. 대신 일합을 겨루는 강호들처럼 총싸움의 시간도 현실감 없으리만치 길다. 이런 설정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히트」에서의 길고 긴 시가지 총격전은 홍콩 느와르에서 빌어온 것이다.

우울한 영웅의 이미지는 정교하게 창출됐다. 모두 라이터를 쓰는 시대에 성냥을 질겅질겅 씹어대고, 머리칼은 무스를 발라 정갈하게 뒤로 넘기고, 검은 색 코트와 정장을 입는다. 독특한 버릇을 가졌지만 늘 절도를 잃지 않는 무사를 닮았다.

「영웅본색」(86)으로 시작해 「첩혈쌍웅」(89)으로 절정을 맞았던 한국에서의 홍콩 느와르는 오우삼 감독과 주윤발로 시작해 그들 콤비로 마감됐다. 또 유덕화, 장국영, 이수현, 양가휘 등 1, 2세대 느와르 배우들은 한국에서는 신화가 됐다.

이들의 상업적 성공은 곧바로 홍콩 영화에 대한 평가절상으로 이어지고, 96년 한국 영화계를 뒤흔든 왕가위 예술영화 신드롬으로 발화된다. 홍콩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예술성을 추인받는 계기였다.

자칫 깡패 영화로 전락해 버릴 수도 있는 일련의 홍콩 영화들에 「난민 정서」라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개입시켰고, 그래서 이들 영화를 「홍콩 느와르」라는 장르로 만든 이들은 아시아의 평론가들이었다. 하지만 그에 열광한 것은 전세계였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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