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한국적 멜로디와 외국 뮤지션들의 편곡·연주가 조화요즘 가요계를 둘러보면 한숨이 나올 때가 있다. 음악적으로 부실한 가요인들을 자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러한 상황은 90년대초, 보다 정확하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돌연한 출현 이후의 일일 것이다. 서태지 이후 한국 가요는 가요 관계자들의 예상을 뒤집고 하루가 다르게 급변했다. 마치 교과서는 보지도 않고 참고서나 과외 공부로 입시를 준비하는 요즘의 수험생들처럼 기본이 돼있지 않은 뮤지션들의 상업적 성공으로 인해 엉뚱한 형태들이 속속 등장했다. 80년대 후반까지 이어져왔던 가요의 전형을 깨뜨린 서태지와 아이들의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다소 암울한 기분이 들 때 듣는 「조용필 10집 Part1」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이 음반은 88년 서울올림픽에 때맞춰 발매되었다. 음반 전체가 외국 뮤지션들에 의해 연주되었다. 당시까지 국내의 어느 음반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완벽한 편곡과 연주는 대번에 내 귀를 사로잡았다. 조금은 상업적인 「서울서울서울」을 비롯, 「모나리자」 「I Love 수지」 「목련꽃 사연」 등은 외국의 어떤 음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국제적 수준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이는 조용필의 음악적 욕심과 탁월한 작곡 능력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무리 훌륭한 편곡자와 연주자가 있더라도 가수와 곡이 기본 이하라면 그 의미는 절대적으로 반감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음반은 나에게 교과서와도 같은 기준을 제시해주었다.
또하나 이 음반이 나에게 준 의미는 「한국적인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트로트를 제외한 모든 가요 장르는 우리 것이 아니다. 외국 음악의 유행을 조금 늦게 우리 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 공통 문화인 대중문화의 특성이기도 하다.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차별화다. 우리의 정서를 담은 것이 곧 세계화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비록 외국 연주자들의 연주를 빌린 것이긴 했지만 「조용필 10집 Part1」은 우리 가요사상 처음으로 세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조용필의 한국적인 멜로디는 외국 뮤지션들의 세련된 편곡, 연주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냈다.
「조용필 10집 Part1」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한국 가요가 얼마만큼 발전했는지, 나를 포함한 우리 음악인들이 그를 위해 얼마만큼 노력해왔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