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가 역사의 전면에서 후퇴한 오늘날, 대부분 국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란 두필의 말이 끌고가는 「쌍두마차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 쌍두마차체제의 고민은 두 필의 말이 전혀 속성이 다르다는데 있다. 민주주의는 「인권」을 먹고 살고, 자본주의는 「금권」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가장 예리한 경제학자이며 은사이기도 한 L교수는 이 쌍두마차체제의 고민을 다음과 같은 촌철살인의 경구에 담았다. 「민주주의는 1인1표이고, 자본주의는 1원1표이다」중소기업정책의 고민도 쌍두마차체제의 고민과 동일선상에 있다. 왜냐하면 중소기업정책은 1%의 대기업이 50%의 경제력을 지배하며 99%의 중소기업이 나머지 50%의 경제력을 지배하는 로렌쯔곡선(경제력집중)위에서 정책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정책은 언제나 「1인1표주의」와 「1원1표주의」사이에서 단진동의 고민을 거듭한다. 예를 들어 월평균 1,100개 정도의 중소기업이 죽어 넘어지고 있는 현상을 다루는 중소기업정책의 양극단은 무엇일까. 아마 한 극단은 「경제적 약자」-선거민 보호입장이고, 반대의 다른 극단은 한계기업 도태-시장논리의 수용일 것이다.
좀더 전문적으로 들어가, 중소기업정책을 2분법으로 단순화하면 「보호정책」과 「적응조성정책」으로 나눌 수 있고 현실적인 정책운용은 이 두 정책사이의 어딘가에 자리잡는다.
보호정책은 「중소기업=약자」라는 차원의 정책으로 국민경제의 발전과 순환적, 구조적 변화에 따라서 시장메카니즘안에서 곤경에 처해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와 구제를 목표로 한다. 이 정책은 비능률적인 기업도 보호해야 한다는 관점에 서 있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충실하려는 「순수」산업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다분히 정치적인 전후관계를 갖는 중소기업정책이다. 「1인1표주의」에 가까운 정책이다.
적응조성정책은 경제의 구조적 발전과 산업고도화에 중소기업이 원활하게 정응할 수 있도록 각종 여건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으로서 「순수」산업정책의 성격을 갖는다. 냉엄한 시장메카니즘에 견딜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시켜 경제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이 정책의 목표이다. 시장경제의 논리에 맞추어서 우아한 이론으로 포장된 이 정책은 「1원1표주의」에 가깝다.
중소기업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이코노미스트의 한 사람으로 정책당국에 건의하고 싶은 것은 현실적인 정책운용에 있어서 보호정책과 적응조성정책사이를 정견없이 내왕할 것이 아니라 정책의 「자리매김」을 분명히 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자리매김을 할 때 논리의 우아함이나 순수성보다는 언제나 확고한 현실인식의 바탕위에 서 달라는 것이다. 현실은 골치아프고 복잡하지만, 이상은 매력적이고 명쾌하다. 때문에 정책당국은 항상 이상쪽으로 치우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정책의 운용에 있어서는 이상을 바라는 보되, 현실쪽에 보다 가까운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소망스럽다. 이 말은 보호정책이 우리 중소기업정책의 「현주소」이며, 적응조성정책은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의 경제학이 이론의 순수성을 추구하면서 「가치중립적」인 학문으로 변환하고 있지만 원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옳았다. 경제정책에 「정」자가 들어가는 것은 정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는 경제운용의 당위성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오늘날 대기업이 한국경제를 좌지우지하면서 「정치」와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지만, 알고보면 이들 대기업도 자력으로 대기업이 된 것이 아니라 「정치」의 비호아래서 「정책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모든 정책은 발전의 단계와 역사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에는 지금까지 중소기업정책다운 정책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제야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중소기업정책은 우선 보호정책에 중점을 두고 성공적인 보호정책위에서 적응조성정책쪽으로 진행하여야 한다. 순수산업정책이란 용어의 「순수」에 결코 미혹되어서는 안된다.<중소기업연구원 부원장>중소기업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