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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식을 낳아봐야…/로버트 할리 국제변호사(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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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식을 낳아봐야…/로버트 할리 국제변호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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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일할 때보다 집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곤 한다. 쉬지않고 떠들어대는 아이들 탓이다. 아이들은 놀면서도, 먹으면서도, 심지어 공부하면서도 시끄럽다.우리집은 아들만 삼형제다. 큰 놈 재선이는 내성적이고 짜증이 많은 아이다. 재욱이라는 작은 놈은 활달하고 장난이 심하다. 막내둥이 재익이는 부모의 말을 잘 듣지만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아이다.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녀석들은 하나같이 번잡스럽다. 이 방 저 방 줄지어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온통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자면서 침대에 오줌을 싸기도 하고, 내 컴퓨터에 입력된 파일들을 삭제해 버리기도 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대신 소리를 질러버리곤 한다.

이럴 때 나는 아이들의 장점을 기억하려고 애쓴다. 재선이는 온가족을 염려해주는 아이다. 재욱이는 온가족을 웃게 만들고, 재익이는 온가족한테 사랑을 보여준다. 얼마나 좋은가. 사실 우리집은 시끄럽지만 사랑이 넘치는 집이다.

나는 6남3녀중 장남이다. 내가 자랄 때 우리집이 얼마나 시끄러웠는지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그래도 아버지께서는 너그러우셔서 화를 잘 내지 않으셨다. 어머니께서도 그랬다. 하지만 아버지보다는 꾸중을 많이 하셨다.

내가 다섯살쯤 되었을까. 어느 비오는 날이었다.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비가 오면 아이들은 집에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한다. 그날 나도 몰래 밖으로 나갔다. 빗물이 고인 웅덩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다가 나는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했다. 미국에서도 비가 오면 땅에서 지렁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걸 보고 지렁이를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넣을 데가 없어 바지 주머니속에 지렁이를 잡아 넣기 시작했다. 놀이에 지쳐 집에 돌아갔을 때 주머니는 지렁이들로 불룩해져 있었다.

어머니는 빗물에 흠뻑 젖은 내 모습을 보고 『빨리 옷 벗어!』하시며 빨래할 준비를 하셨다. 어머니는 빨래를 하기전 늘 주머니속을 뒤져 잔돈 따위가 있는지를 확인하셨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어머니 손에 만져진 것은 꿈틀거리는 100여마리의 지렁이들이었다.

평소 어머니께 벌도 받고 매도 많이 맞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 땐 너무 놀라셨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창 왕성한 아들의 호기심을 꺾지 않고 너그럽게 받아주신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어머니께 고마움을 느낀다.

한국에는 『제 자식 낳아 길러봐야 부모 심정을 이해하고 고마운줄을 안다』는 말이 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아주 자상하고 자녀와 시간을 많이 갖는 아버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못하다. 급한 성격탓에 소리를 자주 질러 귀여운 아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다. 어느새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 바다처럼 넓었던 부모님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진다.<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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