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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해고될지…/봉급쟁이는 괴롭다(고실업시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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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해고될지…/봉급쟁이는 괴롭다(고실업시대:상)

입력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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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기업 부장­어느날 출근해보니 책상 없어지고 의자만 덩그러니 직책없는 문서수발실 옮겨 끊임없는 사퇴종용 버텨왔지만 노동법통과후 이젠 ‘자포자기’/어느 장애인 실직자­28년전 산재사고 한쪽손 못쓰는 것도 서러운데 정든 직장마저 쫓겨나…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 애들 교육비는 어쩌나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K(50) 부장은 말이 부장이지 부서도 없고 사무실도 따로 없다. 사실은 전에 부장이었을 뿐 지금은 마땅히 명함에 찍을 직책도 없다.

K부장은 하루 종일 회사 우편물을 발송하고 수령한 우편물을 각 부서 및 전국 지사에 나눠 주는 일을 한다. 이를테면 문서수발 전담 부장이다. 이 자리는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 외부 용역업체가 맡고 촉탁사원 1명이 관리만 하던 일을 그는 아르바이트 학생 1명을 데리고 6개월 넘게 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7월1일부터 시작한 이 일도 어렵게 얻은 것이다. 마케팅부 근무를 끝으로 95년 3월부터 1년 넘게 아무런 보직없이 지냈다. 보직이 없다는 것은 「알아서 사표를 내라」는 뜻임을 K부장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위원회도 열지 않고 사직을 강요하는 회사의 부당한 조치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시위」를 결심했다.

보직이 없어지자 모든 것이 변했다. 원래 창고였던 자리에 회의용 탁자와 의자, 전화 1대, 캐비닛 1개가 놓여지고 그곳이 그의 자리가 됐다. 수당이 없어지고 급여인상에서도 빠져 월급봉투가 눈에 띄게 얇아졌다. 또 회사 전화번호 안내에서 이름이 빠져 실직한 것으로 아는 친지들이 늘어났다.

함께 버티던 차장 한명이 95년 7월 사표를 내자 더욱 견디기 어려워졌다. 회사 압력도 한층 거세져 『무능력자가 월급만 축낸다』는 비난을 퍼부으며 사직을 종용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3개월동안 체중이 6㎏이나 줄었다.

지난해 4월 어느날 출근해 보니 탁자와 전화, 캐비닛이 사라졌고 의자만 남아 있었다. 회사의 최후통첩이었다.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친데다 인간적인 모멸감까지 들어 더 이상 못버티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성원해 준 동료들의 격려가 떠올랐다. 덩그러니 남은 의자에 앉아 있으니 젊은 후배들이 노동조합을 한다고 난리를 치던 이유를 그제서야 알 것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문서수발실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회사의 사직 종용은 끊이지 않았고 그럴수록 그는 더욱 완강히 버텼다. 그러던 그도 요즘에는 자포자기 상태다. 지난 연말 정리해고를 허용한 노동법 개정안이 새벽에 날치기 처리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해고를 미뤄 온 회사가 곧 「칼」을 휘두를 것이란 걱정에 매일 밤잠을 설친다. 노동법의 효력 발생시기와 해고 예고기간 등을 따져 보니 올 6월이면 쫓겨 날 것이란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쫓겨나면 법정에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는데 그럴 돈도 없고 싸워 이길 자신도 없다. 『일에 대해 자신이 만만했고 때로는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도 했지만 결국 대인관계에서 실패한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참으며 아침밥을 해 주던 아내에게 제일 미안합니다. 차차 퇴직이후를 준비해야죠. 제과점을 하자니 빚을 내야 할 것 같고…. 아내와 의논해서 결정할 생각입니다. 솟아 오르던 울분도 이젠 다 삭았고 한참 원망했던 사람들도 이제는 모두 용서했습니다』

플라스틱 제조업체 S화학의 규모축소 과정에서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김모(47·서울 강남구 수서동)씨. 『해고됐을 때의 심정요?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아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나 그런 심정일 거에요. 동료들과 이별의 악수를 나누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고….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해 10월20일 28년 동안 생산직 사원으로 일했던 정든 회사문을 뒤로 할 때 그는 산업재해로 흉하게 일그러진 오른손을 쳐다보며 한없이 울었다. 4남 3녀의 장남인 그는 69년 1월 전남 장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무작정 상경해 S화학에 들어 갔다. 1개월쯤 지났을 때 야간작업중 롤러에 손이 끼었다. 피대가 고속으로 손목살을 긁어 심한 화상을 입었다. 반쯤 타버린 손목에는 엉덩이살을 떼어 붙였으나 다섯 손가락은 그 이후 다시는 펴지지 않았다. 보상금 5만원으로 매듭된 억울한 사고였지만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그때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해고된 뒤 며칠동안 집에 있어 보니까 답답해서 죽겠더라구요. 집사람과 애들 보기도 민망해 밖으로 나가 무작정 돌아 다녔죠. 한강에 낚싯대를 드리워 보기도 했어요. 놀고 있는 친구 몇명과 서울 근교에 얼음낚시하러 나간 적이 있는데 평일 대낮에 우리처럼 라면을 끓여 놓고 소줏잔을 기울이는 중년들이 많더라구요』

그는 여러군데 재취업 신청을 했지만 나이도 많고 몸도 성치 않아서인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S화학의 「실직동료」 4명은 이미 재취업했다. 『집에서 놀고 있다간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아서』 지난 12월3일부터 친구를 따라 수원의 아파트건설 현장으로 막일을 나갔다. 주로 막심부름을 했는데 허리가 휠 정도로 고된 일이어서 지난 10일 그만 두었다. 『하루는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우는데 「내가 왜 사나」하는 생각이 불쑥 들며 눈물이 솟았습니다』

부인 정모(43)씨도 남편의 실직후 하루 두세시간 밖에 못자는데다 우울증까지 겹쳤다. 외출하기도 겁이 날 정도라고 한다. 자식들도 눈치를 살피고 부모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면 불안해 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존심이 상해서 부모 형제에게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요. 언니나 동생이 전화를 걸어 오면 김서방은 회사 잘 다니고 있다고 그냥 둘러대요. 그래서는 안되는데…』

김씨는 자녀 교육비가 가장 큰 걱정이다.『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습니까. 다만 이제 곧 중3, 고3이 되는 아들딸 교육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지금도 한달에 60만∼70만원이 드는데…. 회사에 다닐 때도 월급은 겨우 100만원을 넘는 정도였지만 쌀과 양념 등을 모두 고향에서 갖다 먹어 큰 문제가 없었어요』

『재취업이 안되면 가락시장에 나가 리어카라도 끌겠다』는 그도 새노동법에 대해 독특한 걱정을 했다. 『정리해고제가 실시되면 가장 큰 피해는 저처럼 산업재해를 당해 장애자가 된 사람들에게 미칠게 분명해요. 업무상 재해를 당하면 회사에서 끝까지 보호해 줘야 하는데 대부분의 기업은 그들을 눈엣가시로 여기죠. 민사소송 시효가 끝나면 일방적으로 내쫓아 버리기 십상입니다』<김성호·이상연 기자>

◎실직,가족에 언제 알리나/빨리 알려 머리 맞대는게 충격 줄이고 새출발 도움

중견기업의 총무과장을 지내다 지난해 11월 명예퇴직한 S(43)씨는 한동안 아내와 냉전을 치러야 했다. S씨는 실직 사실을 아내를 비롯한 주변사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최대한 보호하고 가족이 받을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우연히 회사에 전화를 해 모든 것을 알게된 S씨의 아내는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불가피한 사정인 줄은 알지만 한마디 의논도 하지 않고 사표를 낸 남편이 너무 야속했다. 하릴없이 외출했다 돌아온 남편과 말싸움을 크게 벌인 후 앓아 누웠다. 그러나 혼자 속을 태웠을 남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고 지금은 치킨전문점을 내기 위해 부부가 동분서주하고 있다.

실직을 앞두고 있거나 실직한 가장의 가장 큰 고민은 실직 사실을 언제 가족에게 알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실직은 가장의 권위와 자신감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많은 실직자들이 회사요구로 사표를 내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가족에게 사실을 알린다. 또 다른 사람을 통해 우연히 사실이 알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뒤늦은 실직 통보가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고통을 키우고 재기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게 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온 힘을 몰아 줄 가족에게 회사 상황이나 자신의 처지를 미리 알리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주부경영학교 강경란(45) 교장은 이렇게 충고한다. 『대부분의 아내가 처음에는 남편의 사직을 만류하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으라고 애원합니다. 교육비 등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들어가니 할 수 없지요. 그러나 결국 남편을 이해하고 재기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나서는 것도 아내입니다. 퇴직 직후 퇴직금을 아내에게 맡기고 우선은 가족과 함께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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