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클린턴정권초부터 중동정책 총괄/후세인,아라파트 설득 최종결심 끌어내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역사적 합의에는 두 사람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데니스 로스 미국 중동특사와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헌신적 중재가 이번 합의에 결정적인 촉매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간 「셔틀 외교」를 통해 양측 입장을 조율해 온 로스는 이번 합의에 실질적인 「산파」격이다. 재선에 성공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강력한 중동 평화 의지를 배경으로 양측을 집요하게 설득, 이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핵심 쟁점인 헤브론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시점과 관련, 날카롭게 맞섰던 양측이 서로 1년씩 양보, 98년 8월로 절충한 것도 그의 끈질긴 거중조정 덕분이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수반(대통령)도 『중재에 관한 한 로스는 단연 올림픽 금메달감』이라고 극찬할 정도. 하지만 아라파트가 그토록 신뢰감을 표시한 로스가 유대인이라는 점도 이채롭다. 로스가 극우 유대인들에 의해 「수치스런 유대인」으로 공격받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의 객관적 중립 성향을 입증하는 증좌다.
그는 이번 합의 뿐아니라 중동 평화 회담의 틀을 처음 기초한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을 설득, 마드리드 중동평화 협상을 성사시켰으며 클린턴 정권 초기부터 미국의 중동정책을 총괄 지휘해 왔다.
회담 교착때 마다 양측 정상과 연쇄 회동, 돌파구를 연 후세인 요르단 국왕의 활약도 간과할 수 없다.
그는 특히 12일에는 30년만에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방문, 헤브론 철군시점을 놓고 고민하던 아라파트 대통령을 만나 로스의 중재안을 수용하도록 최종 결심하게 만들었다. 후세인은 이어 예루살렘을 방문해 네탄야후 총리에게도 전향적 양보를 촉구, 협정 가조인을 위한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다는 것이다.
20일 2기정권 출범을 앞두고 중동의 최대 난제 해결이라는 「취임 선물」을 받게 된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전화통화를 통해 후세인 국왕의 중재노력에 경의를 표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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