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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살림살이(한국의 30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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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의 살림살이(한국의 30대:3)

입력
1997.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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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장만에 찌드는 ‘가난한 중산층’/천정부지 집값에 오르는 물가… 아이들 사교육비도 엄청나/허리띠 졸라매도 여전히 얇은 지갑 ‘차라리 즐기며 살자’30대의 나이에 벌써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안정되기를 바라는 것은 감정의 사치일 것이다. 아직은 열심히 일해야 할 나이이고 아직은 저축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쓰는 쾌락보다 모으는 즐거움에 더 친숙해야 할 그들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쪼들림의 고민은 있다. 그같은 쪼들림은 상대적 빈곤감에 의해 배가된다. 물질적 풍요를 맛보며 자란 20대와 성장의 과실을 수확한 40대이후 기성세대의 사이에서 그들은 「경제적 주변인」이다.

버는 돈이 꼭 적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지갑은 얇다. 무엇보다 생활의 출발에서부터 모든 것이 너무 비쌌다. 집값은 이미 오를대로 올랐고 물가 또한 만만치 않다. 비싼 밥값, 비싼 옷값, 여기에다 한번 뛰기 시작한 휘발유값은 어디서 오르기를 멈출지 모른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는 더하다. 안그래도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 골치가 아픈데 초등생 영어교육 「덕택」에 영어과외까지 시켜야 할 판이다. 그래서 30대는 자신을 위해 쓸돈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친구들과, 때로 후배들과 한 잔 술을 마셔도 선뜻 계산하기가 망설여진다.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기지만 「가난한 생활」의 현실감은 어쩔 수 없다.

(주)대우 기획실에 근무하는 이모(32) 대리는 92년 결혼 때부터 내집마련 작전에 나선 실속파. 수당을 포함, 월수입 130만원인 그는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한달에 45만원 가량(2,000만원 융자금 이자에 월 10만여원, 3년만기 1,500만원짜리 근로자장기저축에 월 35만원)을 지출하고 있다.

성동구 구의동의 7,000만원짜리 전세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는 『목돈 7,000만원을 만들면 그럭저럭 집장만을 하겠는데 그러자니 주변으로부터 「짜다」는 소리만 듣는다』고 푸념했다. 이대리는 『3년 뒤 집장만을 하고나면 지금 월급의 절반이 넘는 70만원(2,000만원 추가융자 이자 월 23만원)이 나가게 되므로 「집 사더니 더 짜졌다」는 소리를 달고다녀야 할 것같다』며 푸념했다.

집장만은 30대 가장들을 주눅들게 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 사회에 진출한 이들은 입사초기 엄청나게 치솟는 집값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한 집값은 대선 이듬해인 88년에 14.6%, 89년에 21%(통계청 자료)나 상승하며 정점에 달했다. 당시 H그룹에서 일하다 지금은 독립해 무역중개업을 하는 유한수(37)씨는 『대선을 전후해 서울시내 아파트값은 두배가량 뛴 것같다』며 『무리를 해서라도 사둬야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땐 정말 능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설사 내집마련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사교육비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두산씨그램 동서울지점 영업부에 근무하는 고석삼(38) 과장은 아홉살 난 아들과 여섯살 난 딸을 둔 가장이다. 「내 집」도 마련해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고씨 가정이 자녀에게 들이는 사교육비를 들여다보면 그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지 짐작이 간다.

초등학교 2년인 아들에게는 바둑학원(4만원) 글짓기학원(5만원) 과학교육학원(4만원)에 월 13만원이 들어간다. 딸 아이는 조금 더 해 유치원(10만원) 피아노학원(15만원) 발레학원(30만원) 등에 월 55만원을 쓰고 있다. 월급 170만원 중 68만원이 사교육비로 쓰이는 것이다.

고과장의 사교육비 규모는 조금 큰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녀교육비는 「큰 돈」 못버는 30대 가장들에게 공통적인 부담인 것은 틀림없다. 4학년, 2학년인 두자녀를 두고 있는 김동욱(38·회사원)씨는 『수업료를 받더라도 초등학교 교육을 내실있게 진행했으면 좋겠다』며 『벌써부터 이 지경이니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과외비 감당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교통비, 외식비 부담 또한 계속 늘고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교통비는 89년 개인소득의 2.9%에서 95년 6.7%로 늘어났고 외식비도 89년 6.5%에서 95년 9.6%로 늘어났다. 30대의 「필수품」이라는 자가용이라도 유지하려면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LG건설 김격수(김격수·33) 대리는 『월급 130만원 가운데 자동차할부금으로 22만원, 자동차유지비로 10만원 등 32만원이 들어간다』며 『하루 용돈이 1만원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그러다보니 집장만하려고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보다 「소비파」로 방향을 선회하는 30대들도 생겨나고 있다. 전문직업을 가진 독신자나 소비성향이 강한 일부 30대는 내집마련보다는 레저와 외식, 취미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한국통신에 근무하는 박모(34)씨는 『결혼후 5년동안 모은 2,000만원으로 고급 오디오와 비디오를 사고 장롱과 침대를 바꿨으며 남은 돈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장만에 청춘을 다 보내느니 집 없이도 「인간답게」살아보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30대 경제학의 주제는 결국 수입과 지출의 「사회적 불균형」에 있다. 월급봉투 부피는 늘어났지만 내실은 없다. 95년 기준으로 30대의 월평균 소득은 186만7,050원. 하지만 89년 14%에 달했던 실질임금상승률은 94년 6%로 뚝 떨어졌고 이후 계속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를 「가난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태열(33) 박사는 『30대는 전반적으로 볼 때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도 부지런히 경제적인 삶의 기틀을 닦아가는 「개미」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했다.<서사봉 기자>

◎내집마련의 여건들/평균 8.1년 걸려 대부분 저축으로 충당/보급률 늘었지만 내집 비율은 제자리/‘풍요속 빈곤’

30대는 주택보유에 있어서도 「풍요속의 빈곤」을 느끼고 있다.

통계청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주택수는 95년 말 현재 957만9,000호로 85년의 627만1,000호에 비해 10년 사이 330만8,000호가 늘어났다.

이에따라 85년 71.7%이던 주택보급률도 95년 86.1%로 크게 높아졌다. 이는 6공때 주택 200만호 건설정책에 힘입은 바 컸다. 그러나 핵가족화의 진전과 노령·독신가구의 증가로 자가주거비율(95년 53.4%)은 85년(53.6%)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다. 보이는 게 집뿐인데 내 집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어난 것이다.

주택마련(통계청·92년기준)은 대부분(83.2%)이 결혼 이후에 한다. 주택마련 기간(97년 주택은행조사)은 93년 평균 9년에서 94년 8.5년, 95년 7.9년으로 줄었다가 96년 8.1년으로 다시 길어지고 있다. 결혼후 10∼14년만에 내집을 장만하는 경우가 21.8%로 가장 많았으며 6∼9년이 19.5%, 4∼5년이 14.9% 순이었다. 94년 평균 혼인연령이 남자 28.8세(여자 24.7세)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이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집을 마련한다고 볼 수있다.

주택마련방법(통계청·92년기준)은 저축이 49.1%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상속(29.3%), 부모·친척의 보조(11.2%), 융자 등 기타(10.4%)의 순이었다. 87년과 비교할 때 상속과 부모·친척의 보조는 크게 줄어든 대신 저축한 돈으로 집을 마련한 사람의 비중이 늘었다.

저축에 의한 주택마련비율은 도시거주자와 아파트거주자가 높고 농촌거주자와 단독주택거주자가 낮았다.<김상우 기자>

◎어느 30대 가장의 가계부/월평균수입 250만원/대출이자·차유지비·생활비·용돈·곗돈 빼면 14만원 ‘적자인생’

「한달 적자 14만1,400원」

세살짜리 딸 아이 하나를 둔 30대 가장 김진원(34·가명·현대자동차 대리)씨의 한달 결산이다. K대 통계학과를 89년 졸업, 직장생활 7년3개월째를 맞는 그는 93년 10월에 결혼, 현재 도봉구 창동에 있는 전세보증금 6,000만원짜리 주공아파트(24평형)에서 살고 있다. 결혼전 호텔에서 근무하던 부인(30)은 딸아이를 낳은 후 양육문제로 지난해 5월 퇴직했다. 출퇴근은 대중교통과 자가용(아반떼·95년형)을 함께 이용한다.

김씨의 월 평균 수입은 250만원(정규급여·상여금·연월차수당·성과급 포함). 여기서 근로소득세와 국민연금 의료보험료 등을 공제한 실질적인 가처분 소득은 231만5,000원이다.

다음은 한달 지출내역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전세자금 1,000만원에 대한 이자 18만원, 자동차 유지비(월할부금·자동차세·종합보험료·유류비 포함) 30만원, 아내로부터 타쓰는 용돈 16만원, 주식·부식비 45만원, 외식·레저비 20만원, 의류·가정용품 구입비 20만원, 아파트관리비·전기·전화료 등 주거비 11만6,400원, 외동딸 양육비 17만원, 경조사부조금 8만원, 생명보험료 5만원, 영어학원 수강료 5만원 등. 합계는 205만6,400원.

여기에다 한달 저축액(곗돈) 40만원을 포함한 월 「총지출액」은 245만6,400원. 김씨는 결국 「마이너스 14만1,400원」이라는 적자 가계부를 매달 적어가고 있는 셈이다.

뿐만이 아니다. 은행대출금 1,000만원과 회사 대출금 500만원 마이너스통장 300만원은 고스란히 부채로 남아있다. 물론 지금까지 부은 곗돈 280만원과 주택청약예금 300만원이 있기는 하지만, 이 돈을 활용(주식투자 등 재테크)해 내집 마련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

김씨가 생각하는 유일한 집 장만의 방법은 4∼5년 해외근무를 자원,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매입한 뒤 전세를 놓는 것. 이렇게 되기만 하면 해외근무에서 저축한 돈으로 전세금을 돌려주고 입주하겠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참으로 빠듯하게 살고 있죠. 더욱이 본가나 처가에 대소사가 있는 달이면 그 달은 더욱 쪼들리게 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애써 웃음짓는 김씨. 그에게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30대 가장의 고단함이 그대로 배어나고 있었다.<김관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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