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가간에 이해관계가 얽히거나 오해에서 비롯된 불필요한 외교적 긴장관계가 발생할 때, 또 기존의 외교채널로써는 해결이 도저히 어렵다고 판단되는 중요한 사안이 생길 때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고단위 처방전이 특사 파견제도이다. 따라서 특사는 최고통치자의 큰 신임을 받는 인사가 선정된다. 대개의 경우, 특사를 접수한 국가는 특사가 전하는 메시지를 최종안으로 하여 현안을 종결짓는 게 국제관행이다. 말하자면 특사제도는 외교적 긴장상태를 해소하는데 도입되는 고단위요법인 셈이다.최근 「톰슨특사」로 방한했다는 장 클로드 페유 프랑스 참사원위원을 맞는 우리는 기존의 특사외교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너무나 황당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하게 된다. 우선 특사의 임무가 파견국 정상의 진솔한 뜻을 담아 현안을 해결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대우전자의 프랑스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 불발이 프랑스 사람들의 인종적 우월주의 내지는 선발개도국 한국에 대한 분명한 차별조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라면 특사로서의 분명한 전달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페유 특사로부터 톰슨사태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다 된 계약을 파기한 사유가 「프랑스 민영화위원회의 반대 때문」이라는 어설픈 변명만 들었을 뿐이다. 인종차별 성격의 번복결정이라고 들끓고 있는 내외의 시각을 가라앉히기엔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이미 우리 대사관 등을 통한 유감표명 차원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프랑스가 뭣하러 특사를 파견했는지 특사파견 의도조차 의문시된다.
프랑스의 이같은 궁색한 변명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93년 9월 미테랑 대통령이 고속철 TGV세일을 목적으로 방한했을 때 반환을 약속한 외규장각 고문서도 3년이 넘게 「내부사정」을 이유로 끌고 있다. 비록 「영구 무상임대」 형식이긴 했으나 사실상의 한국반환조치라고 할 수 있는 미테랑의 약속도 그가 다녀간 뒤 얼토당토 않은 조건을 내세우면서 반환을 미루고 있다. 외규장각 고문서란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귀중고서 아닌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상을 강하게 주는 「프랑스식 외교」에 우리도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프랑스로부터의 TGV 도입 문제를 비롯 방산, 원전, 항공부문 등 일련의 경제거래에서 우리는 규장각 고문서의 예나, 대단히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톰슨」의 경우를 반드시 고려해야겠다.
우리 내부에도 문제는 있다. 페이 특사의 「빈가방」을 보면서 줄줄이 그를 만나주는 우리 정부 당국자들의 태도는 한번 재고해 볼 문제 아닐까. 적어도 한두 사람쯤은 불쾌감의 표시로 면담을 거부하는 그런 자세도 우리 외교의 성숙도를 알리는 한 방법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 그런 관리는 한사람도 없었다. 거듭 말하지만 프랑스는 우리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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