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한곳 보충 목적/정신의학적으로는 관심과 애정의 표시/남이 해줘야 효험먹는 사람들은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보약을 지어다 먹였다」는 사람은 여기 저기 수없이 깔려 있어 이 축에 못 끼는 사람들은 말발을 세울 수가 없는 실정이다. 도시 상류층에서 비롯되었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져 요새는 농촌 중년주부들까지도 먹고 또 지어오곤 하니 건강상품 시장에서 보약이 차지하는 비중은 가히 어마어마할 것이다.
보약, 왜 먹는가? 문자 그대로 허한 부분을 보충해주려는 목적에서인데, 자세히 보면 몇가지 목표가 있다. 우선 신체 특정기능이 떨어졌거나 떨어질까봐 미리 보충한다는 것이다. 졸부들이 즐겨 찾는 물개 생식기나 뱀 같은 것은 강정을 목적으로 하며, 임산부에게는 젖 잘 나오게 암소 유방을, 그리고 임신을 기다리는 여자에게는 『씨에는 씨가 좋아』라면서 잣과 호두를 먹인다. 두번째는 「기」를 돋우어 더욱 남자답게 행동하게 하려는 목적에서 호랑이 곰 수캐의 신체 일부나 피를 마시는 것이 그 예다. 또 중년여성들은 여기저기가 쑤시는 경우 건강 전체를 회복해 청춘시절로 돌아가려는 목적에서 보약을 찾으며, 요즘은 입시생 자식에게도 잠 못자도 끄떡 없으라고 지어 먹인다.
보약은 정신의학적으로 해석할 때 「관심 돌봄 애정의 표시」이다. 보약은 비쌀수록 짓는 사람의 정성이 크다고 치부되며, 또 보약 먹는 기간에는 심신안정을 취해 힘든 일을 중지하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이 기간에는 술자리를 애써 피한다. 우리는 오랫동안 감정표현을 억제하도록 세뇌당해 왔고, 특히 기쁨 좋음 사랑의 표현에 무척 인색하였다. 남녀간의 사랑표시가 타인 앞에서는 금기였고, 젊은 부모의 자식사랑은 노부모 앞에서 내세울 수 없었으며, 시부모와 며느리간의 정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형제간의 우애나 장모의 사위사랑이 예외에 속했다고나 하겠다. 따라서 보약을 지어다 주는 것은 정표로서, 먹는 사람은 마음 깊이 이를 새겨 넣게 마련이다.
그래서 스스로 보약을 지어 먹는 사람은 외롭다. 자식들은 출가해서 떠나 버리고 남편은 보약을 받아 먹기만 했지 한번도 지어온 적이 없는 50대 주부중 일부는 할 수 없이 스스로를 위해 지어 먹지만 이 때는 먹을수록 더 아픈 경우가 많다. 이는 관심대상에서 제외된 자기 처지, 나 몰라라 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에 대한 분노, 비싼 돈을 썼다는 죄책감 등이 합쳐져 그녀를 찍어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약은 남이 해다 주어야 한다.
나도 이제 양의생활 35년에 접어들어 제법 사회 각계각층의 내부세계를 그 어떤 직업인보다 심도있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보약 소비에 관한 한 가장 불쌍한 층이 재벌과 기업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뜻 생각하면 요즘 한국 재벌과 기업가들은 온갖 보신을 다 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반대다. 이들은 일중독증에 걸려 휴일도 변변히 없으며, 쉬더라도 사업생각 뿐이니 보약을 먹을 틈이 없다.
기업주라고 해서 우리같은 보통사람보다 별로 누리는 것이 없다. 우리도 이들과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비슷하게 자가용 자동차를 굴린다. 이들에게도 우리 비슷하게 집안 동기간 경쟁과 원한이 있어 잠 못잘 때가 있다. 이들이 우리보다 나은 것은 다소 넓은 주거공간, 고급 취미생활과 잦은 해외나들이, 비행기의 일등석 정도가 되겠는데 실은 대단한 것이 못된다. 서양에 나가 보았자 그쪽 사람들은 이들을 몰라 보며, 비행기도 점차 빨라지니 우리같은 사람은 그저 10시간 정도만 삼등석에서 웅크리고 참으면 세계 어느 비행장에건 같이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시대가 닥쳐왔고 각 나라마다 기업가들은 자기 나라 국민들을 먹여 살리느라 경쟁에 경쟁을 하는 시대에 왔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우리 기업의 간판과 물건을 동구의 소도시나 지중해의 섬 시칠리아에서 발견하고 놀라며, 또 자랑스러워 한다. 죽마고우와의 허심탄회한 술자리도 변변히 갖지 못하면서 회사 사람들에게는 『돼지』라고 욕을 먹는 한국의 불쌍한 재벌과 기업주들에게 우리 모두 푼돈을 모아 「보약」을 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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