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는 요즘 정치 슬로건의 중요한 메뉴가 되어 왔다. 전두환 정권도, 노태우 정권도, 김영삼 정권도 모두 규제완화를 통한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을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아왔다. 새로 선출될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를 당하는 당사자들은 규제완화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겠다고 아우성들이다.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피규제자들이 규제완화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려면 규제의 본질을 건드려야 한다. 그것은 대개 규제를 폐지하는 것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규제완화작업은 행정절차의 간소화나 규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만 치중해왔을 뿐이다. 줄기는 그대로 둔 채 곁가지만을 쳐낸 것이다.
그렇다면 규제의 본질을 건드리지 않은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어느 누구도 규제완화에 따른 금단현상을 감수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는 마약과 같다. 시작하기는 쉬우나 끊으려면 금단현상이 따른다. 나라가 잘되려면 창업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러나 창업 규제를 제거하려면 기존업자들의 저항이라는 금단현상이 따른다. 도산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극단적 예로는 자살하는 사람도 생길지 모른다. 따라서 기존업자들은 여러가지 경로를 통하여 조직적으로 반발한다. 과잉중복투자, 경제력 집중, 생존권 보장 등은 가장 자주 등장하는 반발의 명분이다. 소비자들의 이익은 뒷전이 되어 버린다.
기업의 해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 근로자들과 노동조합들이 보이고 있는 반발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환경이 바뀌면 근로자들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종신고용이라는 법적인 보호막 안에서 안주하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는 경고는 쇠귀에 경읽기일 뿐이다.
규제완화의 금단 현상이 국민 대다수의 저항일 경우도 많다. 규제의 기회 비용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규제의 명분만을 보고 규제완화에 반대하는 경우이다. 수도권집중 억제책이나 그린벨트제도를 완화하려 할 때 대다수의 국민이나 언론, 그리고 관련 공무원들이 보여 준 태도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찬성하지만 구체적 사안으로 들어가면 시장 기능 보다는 규제를 택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정서이다. 따라서 피부에 느껴질 정도의 규제완화를 이루려 한다면 국민정서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밖에 없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그것은 정치적 모험임에 분명하다. 자살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면 돌파의 승부수 없이 규제완화를 이룰 수는 없다. 기껏해야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거나 공무원의 친절성을 약간 더 높여주는 정도의 수준에 그칠 것이다.<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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