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새학기 재학생들의 등록금을 10∼15%선까지 인상하려 했던 많은 사립대학들이 정부의 「5% 인상 억제」 종용을 못이겨 한자릿수의 소폭 인상만 할 모양이다.정부의 소폭인상 방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립대학들은 내부적으로 이미 결정해 놓았던 두자릿수 인상폭을 고수하려고 한동안 버텼던 것으로 우리는 안다. 그러나 서울의 10대 사립대학 총장들이 교육부장관과의 간담회에서 소폭 인상 방침에 무릎을 꿇음으로써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인상폭의 가이드라인은 한자릿수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지난해만도 무역적자 규모가 203억달러에 이르렀고 계속되는 경제불황으로 해서 국민들의 삶이 그 어느때보다 어려워진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에 대학생 학부모들의 등록금 부담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게 됐다는 것은 반겨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사립대학들은 보다 알뜰한 대학재정 운영과 허리띠를 졸라매는 내핍경영으로 등록금을 조금이라도 덜 인상해 국민들의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액면 그대로 환영할 수만은 없는데는 큰 이유가 있다. 등록금 인상률을 정하는데 물가인상 논리만을 적용하다 보면 적기에 투자를 못하는데 따른 대학교육의 질적 하락을 어떻게 방지할 것이냐는 문제다.
163개 우리 대학들은 세계 100위에 드는 대학이 하나도 없다. 학생대 교수비율, 실험실습기자재, 도서관의 장서규모, 마이크로 강의하는 대형 강의실과 콩나물 강의실 등 낙후된 대학의 교육여건은 OECD급은 고사하고 후진국의 대학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0∼20%의 재단전입금을 내는 대학재단은 한두개 정도이고 전입금을 한푼도 내지 못하는 재단도 많다.
절대다수의 사학들이 대학재정의 78% 이상을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다. 물가인상수준의 등록금만을 인상하게 된다면 인상분으로 교수봉급을 올려 주고 나면 끝나게 될 것이다. 턱없이 모자라는 교수를 늘려 대학다운 교육을 하게 하고, 낙후된 교육환경개선은 무슨 돈으로 한다는 것인가. 정부의 사학재정지원금이래야 사학재정의 4%밖에 안된다. 일본·미국은 사학재정의 20∼30%를 지원한다. 정부가 73년 사학의 등록금 인상권한을 몰수했다가 89년 되돌려준 16년동안 사학들이 성장과 발전을 저지당했던 「사학의 암흑기」를 다시 보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그래서 하게 되는 것이다. 사학들이 지난 7년동안 등록금을 평균 14.4%씩이나 인상해 소비자물가 상승률(6.4%)의 2배 이상을 올리는 것에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졌던 것도 그렇게 해서라도 대학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여 주기 바랐던 국민적 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비록 학부모 부담이긴 하지만 사학의 투자를 중단하게 한다면 그 어려운 경제를 되살릴 대학교육의 경쟁력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것이 염려돼 싼 등록금을 반길 수만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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