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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토론도 논쟁도 대안도 없다/동문·사제간 등 얽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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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토론도 논쟁도 대안도 없다/동문·사제간 등 얽혀

입력
1997.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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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사라진지 오래미술계가 적막하다. 논쟁도, 토론도, 대안도 없다.

「평론가들의 기회주의」를 맹렬히 비난한 평론가 최민의 자기반성적 비평(82년), 「미술평론 반성하라」는 문학평론가 김현씨의 주장과 이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발(87년), 「미술비평 수준미달」이라는 당시 젊은 비평가 김영재씨 주장과 장석원씨의 공방전(88년), 오상길의 포스트모던 작품에 대한 평론가 유재길씨의 비난과 논쟁(90년),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인 서성록씨와 민중계열 평론가 박찬경씨의 격렬한 공방(91년), 미술사가의 미술비평을 쟁점으로 한 미술평론가 정영목씨와 서성록씨의 싸움(92년).

물론 과거 이런 논쟁들이 「밥그릇 싸움」이나 졸렬한 감정 싸움으로 흘렀던 것도 우리 미술계의 부끄러운 현실이기는 하지만, 논쟁은 대안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늘 환영받을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세기말적 흐름 탓일까. 요즘 우리 미술계에는 이렇다 할 흐름과 이슈가 없어지고 작가들도 작품의 방향을 잃었다. 모더니즘, 민중미술, 포스트 모더니즘 등 미술계의 주요 이슈가 사라진 것도 한 이유다.

그러나 요즘 미술 비평은 더없이 힘을 잃고 있다. 평론가들은 칭찬 일색의 「주례사 비평」이나 아무리 읽어봐도 뜻이 통하지 않는 암호문 같은 비평으로 대중을 등돌리게 한다. 또 출신 학교가 같은 비평가끼리는 아예 언급을 회피, 뒤에서 비난을 할 지언정 공식적인 루트로는 절대 논쟁하지 않는다. 스승과 제자간에 논쟁은 꿈도 못꾼다. 아무리 작가들의 미술적 움직임이 「세기말적」이라 하더라도 요즘의 우리 비평계가 처한 상황은 비평계의 인적 기반에 비춰볼 때 좀 지나치다.

60년대 이일 유준상 이구열 오광수 김인환 임영방 김해성 등 비평 1세대가 형성된 이래 70년대 박용숙 백래경 정병관 김복영 김윤수, 80년대 이후 최민 성완경 윤범모 원동석 유홍준 최열 라원식 박신의 최태만 김영재 장석원 최병식 서성록 이준 김영순 유재길 강성원 등 우리 미술계에서 활동중인 비평가만도 줄잡아 70∼80명이다.

평론가 이용우(고려대) 교수는 『전시 중심의 비평, 학문적 연구보다는 전시서문이나 요구받는 게 요즘 비평가들의 현실』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미술사적 이데올로기를 리드하는 정치비평이 평론가의 임무는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후 트랜스 아방가르드 등 미술 운동을 주도해온 이들도 평론가임을 생각하면 흐름이 없는 시대에 평론가의 선도적 활약은 더욱 필요하다.

다행인 점은 미술사학자들이 대중비평활동을 시작해 영역을 넒히고 있고, 공간이나 테크놀로지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전문비평이 모색되고 있다는 점.

『비평의 이론적 틀이 없는 현실은 어쩌면 행운일 지도 모른다. 이런 공백 상태에서 새로운 모색은 파벌과 묵계가 판쳐온 그간의 우리 미술비평계를 혁신하는 계기가 될 지도 모른다』 새로운 노력이 전제된다면 한 젊은 비평가의 이 지적은 물론 현실이 될 수도 있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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