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궁합 관상 운세 내건 철학원·처녀도사·보살·신당집/21세기 앞두고도 여전히 번창/선거·입시·인사철이면 문전성시/용하다는 몇곳을 찾아갔는데 그 점괘라는 게…서울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 고개」의 역술원 거리. 역술원과 철학원 간판이 100m가량 다닥다닥 이어져 있다.
「OOO 철학원」이라는 큼지막한 간판이 걸린 골목안 허름한 한옥의 문을 열었다. 주인은 50대 초반의 맹인 남자. 일대에서 일하는 맹인역술인이 80여명이나 된다. 사주팔자를 보러 왔다고 했더니 생년월일시와 주소를 물었다.
그는 2, 3분동안 깊은 생각에 잠긴 후 산가지가 든 조그만 「산통」을 3번 정도 흔들었다. 역서를 볼 수 없는데 어떻게 사주를 보느냐고 물었더니 『다 외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재물과 여자복이 없어요. 38세 이후 재복이 드니 사업을 하려면 그때나 하면 되는데 어차피 큰돈은 못벌겠어요. 결혼은 늦게 할수록 좋아요. 일찍 결혼하면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겨요. 궁합이 안 맞으면 결혼한 지 3년이내에 이혼해요. 도화 망신살이 뻗쳤으니 여자조심 많이 해야겠어요. 수명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 관운은 없는 편이네요. 출세를 하더라도 늦겠어요. 자식복은 많아 딸을 많이 낳겠는데 혹시 결혼했나요?』
이어 들른 곳은 「처녀때부터 도사」라는 간판을 단 역술원. 주인은 40대 후반의 맹인 여성이었다. 그가 밝힌 기자의 사주팔자는 약간 달랐다. 『공직에 있으면 출세하고 사업을 하면 번창하겠어. 객지로 나가 일해야 좋고 부모형제와 같이 살지 않는 게 좋아. 남이 보면 자상하고 얌전한데 조금은 날카로운 성격이네. 40대 이전에 직장 옮기거나 사업에 손을 대면 실패하니 조심하고. 결혼은 늦게 할 수록 좋고 일찍 장가가면 두번 장가갈 운이야. 40대 이후에 재물이 많이 들어오고, 50대가 되면 자식덕에 영화 누리고, 60대에 명예와 권력을 쥐겠어. 여자 때문에 애로가 많고 또 친구 때문에도 고생하겠어. 친구말 함부로 믿지 말고. 수명은 괜찮고 자식들은 공부 잘하겠어』
부근 철학원의 사주풀이는 또 달랐다. 주인인 50대 초반의 남자는 『재물복과 여복이 너무 없는데다 건강도 좋지 않다』고 했다. 대신 자식복과 관운은 좋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관운이 너무 좋아서 탈이야. 사주팔자에 관운괘가 1, 2개 있어야 추진력이 있는데 댁은 관운괘가 5개나 들어 있어서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는 게 없는 운이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철학원에서는 전혀 다른 소리였다. 『좋구만. 청룡이 동하는 팔자야.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돼 있어. 재운도 있고 관운도 좋아. 자식복도 있고. 수명운도 괜찮은데 위장이나 간을 조심해야겠어. 다 좋은데 여자를 조심해야지. 외박하지 말고. 뭐가 걱정이야, 아무 일 없어』
31살에 4·2세의 두아들을 둔 기자의 사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처럼 달랐다. 역술인들은 그 이유를 수준차에서 찾았다. 『역술인에 따라 배움의 차이가 있는데다 괘를 분석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대권천명」의 저자 박영창씨는 『유명 역술인이라도 70∼80%정도 밖에 못 맞춰요. 사주만 해도 관련서적이 수백권인데 그것을 다 외우고 다시 자기나름의 틀로 소화하려면 100년은 연구해야 할 겁니다. 현재 간판을 걸고 있는 역술인 수만명 가운데 실력자는 1,000명도 채 안됩니다. 실력없는 사람은 추측이나 감으로 말할 수 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취재팀의 또 다른 기자는 신점을 치는 무속인들을 찾아 다녔다. 그들이 내놓은 점괘도 각각 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의 「OO보살」. 방송출연 경력도 있는 이 보살(33)은 꽤 용하다고 소문나 있다. 먼저 와 있던 30대 초반의 두 아주머니가 함께 방에 들어 가자 이내 녹음기에서 주문같은 소리가 흘러 나왔고 방울 흔드는 소리도 들렸다. 보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밖에까지 또렷이 흘러 나왔다. 『미친년이 푸닥거리한다. 미친년 푸닥거리가 무언줄 알아. 3, 4년이 시끄럽겠어. 아니 7, 8년이네. 조용할 날이 없구만. 반대하는 결혼은 왜 했어. 좋은 사람두고 반대하는 결혼을 왜 해』
맞다는 뜻인지 어이없다는 뜻인지 두 아주머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차례가 돼 들어 선 두평 남짓한 방안에는 왼쪽벽에 부적이 잔뜩 붙어 있고 제단에 촛불이 5,6개 켜져 있었다. 컴퓨터도 있었다. 기자(30)가 생년월일을 대자 컴퓨터에 입력하더니 잠시후 입을 열었다. 『올해(음력은 아직 96년) 변동수가 있었네. 회사를 옮기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구만. 옮기려면 올해 옮겼어야 했는데 내년에는 옮기지 마. 내년에는 변동수도 없어』
기자가 부서이동이 있었다며 『잘 옮긴건가요』라고 짐짓 되묻자 『잘 된 거야. 잘렸어야 할 판이었는데』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이어 애가 있느냐고 물어 6개월된 딸이 있다고 했더니 『수술해서 낳았느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컴퓨터의 「배」자 칸에 쓰여진 「양」자를 가리키며 수술할 운이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문답으로 넘겨 짚는 인상이었다.
두번째로 찾아간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OO신당」. 40대 초반의 여성 점술인 S씨는 이 바닥에서 「신점의 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처음 기자를 대하자 마자 『몸이 안 좋네요』라는 한마디를 던졌다. 기자가 『어디가 안 좋습니까』라고 되묻자 『기관지가 안좋고 특별히 아픈 곳은 없어도 기순환이 잘안돼 빨리 피로해지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은 거지요』라고 말했다. 기관지염으로 자주 이비인후과 신세를 지고 있는 기자는 가슴이 뜨끔했다. 앞서 OO보살한테서도 『혈액순환이 안좋다』는 말을 들은 뒤였다.
그러나 그는 OO보살과 달리 내년(97년) 7월에 회사 또는 부서 변동수가 있다고 했다. 그는 또 뭔가 불안해 하며 반말을 늘어 놓던 OO보살과는 딴판으로 공책에 신이 일러준다는 말을 이상한 글자로 써 가며 차분히 설명했다.
세번째로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XX보살」. 30대 중반의 보살이 나와 불상과 산신령상 등이 놓인 제단 앞에서 주문을 외며 손을 비비더니 기자앞에 앉았다. 이어 섬뜩한 말들을 쏟아 냈다. 『가문에 젊어서 죽은 원한 많은 귀신들이 많아. 세월에 속고, 돈에 속고, 사람에게 속는 격이야. 운은 들어 왔는데도 돈이 안 들어오고 곁에 도움되는 사람도 없고… 일은 해도 안되고. 또 마누라 사주가 앞길을 막고 있으니 궁합도 안 좋아』
그러면서도 30세부터 50세까지 운이 좋으니 운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방법을 묻자 『보이지 않지만 곁에 떠도는 신을 달래야 하는데 돈만 주면 내가 알아서 한다』며 『고기값 50만원 치고 전부해서 250만원만 가져 오라』는 것이었다. 또 『눈이 침침하고 팔목과 무릎이 저리지』라고 엉뚱한 소리를 해 아니라고 했더니 『신이 알려주는 대로 말하는 것이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일은 알 수 없지만 지난일로 얘기 하면 OO보살은 상식이 있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정도를, S씨는 80∼90% 가량을 정확히 말했다. 마지막 XX보살은 틀린 말만 골라 하면서 돈드는 굿만 유도하고 있었다.<김성호·이진동 기자>김성호·이진동>
◎신세대 무당 김명수씨/“신병 앓아보지않은 사람은 그 기분 몰라요”/점보러 갔다가 무당된다는 말에 처음엔 코웃음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점집 「인왕산 할아버지」를 내고 있는 무당 김명수(28)씨.
지난해 3월 내림굿을 받고 정식 무당이 되기까지 그는 고민을 거듭했다. 3년전 직장을 옮기려고 친구와 함께 점을 보러 갔다가 『곧 말문이 터지겠다』는 말을 들었다. 신이 내려 무당이 된다는 것으로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지만 1년후부터 증상이 나타났다. 『몸이 찢기는 듯 아프고 불면증이 찾아 왔어요. 처음 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방울을 던져 주기도 하고 칼로 치기도 했어요. 내림굿을 받기 위해 날을 잡을 수 밖에 없었죠. 신병을 앓아 보지 않은 사람은 그 기분을 알 수 없어요』
호주에 있는 친구집으로 도피여행을 떠나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꿈에 인왕산 할아버지가 나타나 『인왕산이 네 집인데 여기서 뭐하느냐』고 들볶았다는 것이다. 결국 내림굿을 받고 집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금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때가 많다. 『작두에 올라가 춤출 때는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어요. 하지만 굿이 끝난 후 거울에 비친 제모습을 보면서 참 많이 울었어요』
그의 나이 때문인지 젊은층이 많이 찾지만 손님들의 연령과 삶은 다양하다. 바람 피우는 아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중년남자, 원단색깔을 골라 달라는 의류회사 사장, 직장을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들은 점이라는 형식으로 인생상담을 하고 저마다 마음 기댈 자리를 마련해 간다. 『얼마전에는 젊은 여자 2명이 아는 사람 궁합을 봐 달라고 찾아 왔어요. 처음부터 두사람이 동성연애자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자기들 궁합을 보는 것이라고 털어 놓더군요. 여자들끼리의 궁합은 보지 않는다고 설득해서 보냈죠』
산에 가서 기도하고 굿하고 점보고 하는 생활이지만 별로 시간 여유가 없다. 『결혼이요? 아직 수양도 덜 끝났어요. 때가 되면 할아버지가 좋은 배필을 소개해 주실 거예요. 모든 것을 운명으로 알고 기도하면서 살 뿐이에요』<이상연 기자>이상연>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