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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무속인 10만명 훨씬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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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무속인 10만명 훨씬 넘어

입력
1997.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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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퇴직·감원바람 연말 대통령선거/뒤숭숭한 사회분위기속 끝없는 번창·막대한 복채/‘스타’ 점술가 만나려면 예약후 몇달 기다려야/700서비스·PC통신서도 점술은 뺄 수 없는 메뉴한 역술인은 올해 우리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망했다. 『97년 한국은 역술이 판치고 신점이 횡행하는 점술의 천국이 될 것이다』

사회가 불안하고 흔들릴 수록 점술이 기승을 부린다는 점에서 이같은 전망은 맞아 들어갈 것 같다. 명예퇴직과 감원바람이 분 데다 노동법 개정으로 봉급생활자들의 목이 더욱 불안해 졌고, 경기불황과 기업의 도산이 예견돼 있고, 12월에는 대통령 선거도 있고, 북한의 상황도 불투명해 뒤숭숭하기만 한 것이 올해다.

한국역술인협회 대한경신연합회 등 관련단체들이 주장하는 전국의 역술인과 무속인 숫자는 10만명을 훨씬 넘는다. 여기에 역학이나 풍수 등에 흥미를 갖고 공부하는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엄청난 사람들이 점술을 행하고 있다. 점술가의 숫자와 비례해 복채규모도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 사주 궁합 관상 수상 택일 등 운세 감정은 이미 생활 전반에 자리 잡았고 남녀노소 학력 직업에 관계없이 점집을 찾고 있다. 요즘 이름난 「스타」 점술인과 상담하려면 예약후 며칠, 심한 경우는 몇달을 기다려야 한다. 단골손님만 5,000∼1만명이라고 장담하는 몇몇 점술가는 유명인사의 사주 등을 적어 놓고 자기선전에 이용하기도 한다.

대기업 부장 P(48)씨는 최근 안면이 있는 점술인에게 올해 운세를 봤다. P씨는 4년전에도 부장 승진에서 연거푸 탈락하자 답답한 심정에서 이 점술인을 찾았었다. 점술인은 당시 1년만 참고 기다리면 승진할 운이라고 말했고 다음해 P씨는 거짓말처럼 승진이 됐다.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하고 있던 차에 지난해 회사에 몰아 닥친 감원바람이 다시 P씨의 마음을 흔들었다.

버텨봤자 이사 승진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이민을 갈까 하고 문을 두드린 것이다. 그러나 점술인의 대답은 『내년에 승진이 될 것이니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다. P씨는 이번에도 점술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사실 내년에는 승진대상에 들지도 못해요. 하지만 운이 워낙 좋다고 하니 눈치밥을 먹더라도 1년 더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95년 대학입시를 치른 L(19)군의 부모들은 한 점술인을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당시 L군의 수능성적이 원하던 대학에는 들어갈 수 없는 140점대였다. L군의 부모는 애가 타 점을 보러 나섰고 이 역술인에게서 『원하는 S대에 원서를 내도 100% 합격할 운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L군은 본고사에서 실력을 발휘해 가까스로 합격선을 넘었다. 이후 L군의 부모는 대소사를 모두 이 역술인과 의논하게 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나 현재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점술인을 먼저 찾아요. 정치인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은 선택과 결정이 일반인보다 많으니 더 자주 찾지요』 역술인 이송헌(58)씨의 얘기다. 이씨는 최근 40, 50대 중년남성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점술은 불경기를 타지 않는 「유망산업」이다. 천리안 하이텔 등 PC통신망에는 평균 5, 6개의 점술 서비스가 성업중이다. 대개 1분당 50원의 요금을 내야 하는 부가서비스지만 일부 서비스는 한달에 22만명이 접속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나머지 업체도 적게는 2만명, 많게는 17만명의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청소년이 주고객이고 서양식 점성술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전화정보사업인 700서비스에서도 점술은 빼놓을 수 없는 메뉴다. 8000번대의 번호는 모두 점술서비스로 현재 605개 번호가 운영되고 있다. D정보회사 관계자는 점술서비스가 절대 손해보지 않는 사업이라고 말했다. 또 역학 종합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사주 궁합 등을 보는 체인점도 전국에 40곳이나 된다. 주부나 자영업자들이 작은 공간에 컴퓨터와 프린터만 갖추고 즉석에서 점을 봐주고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지금 이시간에도 전국의 점집과 역술원은 붐비고 있다.<이상연 기자>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맹신도 불신도 말고 그저 참고정도로”

『저승갈 길이 뭐 그리 급합니까』 88 서울올림픽 직전 40대 초반의 남자가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한 철학원에 들러 생년월일을 댔을 때 역술인 이모씨가 대뜸 한 말이다. 찾아온 40대 남자의 사주를 풀어본 결과 실패운이 짙게 끼어 있는데다 얼굴마저 사색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이 남자에게 『곧 어둠이 가고 새벽이 올테니 조그만 더 참으라』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이 남자는 복채를 주려는 듯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수면제를 한움큼 꺼냈다. 그는 사업이 거푸 실패한 데 이어 또 부도가 나 빚쟁이들에게 쫓기자 자살을 결심하고 죽으러 가던 길이었다.

이씨는 『딱 2년만 지나면 운이 트여 일이 잘 풀릴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라』고 달랬다. 3년후인 91년 생기가 넘치는 40대 중반의 중후한 남자가 찾아 와 3년전의 복채라며 두툼한 봉투를 내놓았다. 3년전의 그 남자였다. 어느새 어엿한 사업가가 돼 있었다.

반면 점집을 찾았다가 망한 경우도 있다. 신촌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안모씨는 95년 「작두보살」이라는 무당을 찾아 갔다가 섬뜩한 얘기를 잔뜩 들었다. 『조상신을 달래야 액을 피할 수 있다』며 굿을 권해 500만원을 빚내 굿을 했다. 그런데도 장사가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그 무당을 찾아 갔더니 『아예 신을 모시는 내림굿을 해야 한다』며 다시 800만원을 가져 오라고 했다. 안씨는 내림굿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도 속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었다.

또 대학입시를 앞두고 아들의 S대 합격여부를 알아 보려고 한 역술인을 찾았던 김모씨는 『운이 좋아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원서를 내게 했다가 떨어지자 삼수를 시킨 뒤에야 지난해 H대에 넣을 수 있었다. 이처럼 역술인의 말이 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특히 점집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미래에 대해 불안을 안고 가기 때문에 한마디 한마디를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말이나 무턱대고 믿었다가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역술인 이한국씨는 『운명을 지나치게 맹신하지도, 그렇다고 무턱대고 불신하지도 말고 그저 참고하는 정도여야 한다』며 『운명감정은 현재의 자기분수를 정확히 깨닫게 해 불확실한 미래를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역술인들은 또 의뢰인의 형편이나 처한 입장을 생각지 않고 입을 함부로 놀리는 엉터리들의 말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속인도 마찬가지. 민속학자 이원섭씨는 『진짜 신점은 신이 일러주는 대로 전하면서 그 사람의 형편까지 헤아리는 것』이라며 『필요이상으로 몸을 흔들거나 눈을 까 뒤집고 얼굴에 갖가지 표정을 연출하는 무당, 「신령님이 무섭지도 않느냐」며 욕설을 퍼붓는 무당, 차 담배 각성제 등을 지나치게 많이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정서불안형 무당은 대부분 가짜』라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점집 어떻게 문여나/역술인협회·경신연합회서 실기교육

「OO철학원」 「OO보살」등 웬만한 동네에 한 두곳은 운명감정을 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다. 용하다고 소문이 나 멀리서까지 상담자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루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예 고객의 발길이 끊어지다시피 한 곳도 있다.

대부분의 역술인과 무속인은 각각 한국역술인협회와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해 있지만 아무런 등록도 하지 않고 점을 치는 사람도 많다. 「점쟁이」로 나서는데 특별한 자격시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법적규제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3만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한국역술인협회에 가입하려면 개인교습이나 서울 강남구 논현동 동양역리철학학원의 5개월 과정을 마치고 협회심사를 거치면 된다. 일단 회원이 되면 기본능력은 인정받은 셈이다. 동양역리철학학원은 문화센터 등을 거쳐 개업을 염두에 둔 수강생에게 명리학(사주) 상리학(관상) 풍수지리학 성명학 주역 등 5개 과정을 가르친다. 이 과정이 끝나고도 대개 1, 2년간 경험을 쌓은 후 개업한다. 협회관계자는 『대략 연 2회, 40여명의 수강생이 나오는데 개업하는 사람은 20∼30%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점을 치는 무속인은 까닭없이 앓는 「신병」으로 고통을 겪고 신을 받아 들이는 내림굿을 거쳐야 한다. 일단 내림굿을 받고 개인적으로 몇가지 기능을 익히면 무속인으로 행세할 수 있다.

대한경신연합회 소속 학원은 무속인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에게 춤과 장구 바라 등 악기 사용법을 포함한 「굿 실기」를 가리켜 내 보내고 있다. 연합회 최수진 총무국장은 『연합회는 71년에 설립됐는데 현재 197개 시·군지부에 10만여명의 회원이 있다』며 『가짜 무당도 있을 수 있지만 회원인 경우는 서로 신내림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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