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서 규제왕국을 뽑으라면 우리 국민은 십중팔구 우리나라를 꼽을 것이다.우리나라가 규제왕국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시장보다는 정부가 자원배분을 더 잘 하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민간부문이 취약했던 70년대까지는 옳았다고 보아도 괜찮을 것이다. 정부주도에 의한 우리경제의 괄목할만한 성장기록이 이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는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 부족을 들 수 있다. 세계화·정보화의 물결이 지구촌을 휩쓸면서 국경없는 무한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민간의 창의와 자율이 더욱 중요시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아직도 가부장적 자세로 훌쩍 커버린 민간부문을 아이취급하며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고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를 푼다는 것은 기득권의 포기를 대가로 한다. 실질적인 인사권의 포기, 떡값의 포기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어도 신고를 접수하지 않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알맹이를 빼놓고 규제완화를 하니 건수는 많아도 내실이 없고 형식에 그치니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실효성있는 규제완화를 위해서는 정부, 특히 공무원들의 인식변화가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은 규제를 지속하는한 우리의 경쟁력은 결코 향상되지 못한다는 점, 정부란 지배하고 군림하는 권력체가 아니라 봉사하고 지원하는 서비스 조직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식이 굳게 자리잡지 않는한 규제완화는 피상적이 되고 규제가 완화되지 않는한 우리나라는 기업활동의 사각지대가 될 것이다. 정부능력의 한계와 정부역할에 대한 재인식, 민간부문과 시장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명실상부한 규제완화가 가능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규제완화란 한마디로 경제활동이 경쟁적이 되게 함을 뜻한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이기고 살아남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노력이 배가되며 이것이 바로 경쟁력이 된다.
규제완화를 위한 접근법으로는 다음과 같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현행 규제 가운데서 어느 것을 풀 것인가」하는 접근보다는 백지상태에서 「꼭 필요한 규제가 무엇인가」하는 제로베이스의 접근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규제완화를 실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속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전담기관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고는 부처이기주의와 이해당사자들의 압력으로 시간만 낭비할 가능성이 크다.
셋째, 진출입규제 완화가 중요하다. 현재 진행중인 규제완화는 대부분 기존 기업들의 활동을 자유롭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규제완화의 궁극적인 목적인 경쟁촉진을 위해서는 시장에 대한 진출입이 자유로워야 한다 넷째, 규제완화만을 따로 떼어서 검토하기보다는 정부조직 및 기능의 재편과 연계지어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조직과 기능의 재정립은 공공부문의 민영화, 규제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규제완화라고 해서 모든 규제가 완화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환경분야나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규제 등 더욱 강화되어야 할 분야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규제왕국의 경제는 미래가 없다」는 점을 거듭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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