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다,그러나 슬픈 우리의 어머니…”/소설 ‘아버지’ 신드롬에 도전베스트셀러 소설 「아버지」신드롬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어머니」를 소재로 한 장편이 나와 주목되고 있다. 화제의 책은 신인 작가 지세현(33)씨의 장편소설 「아내의 겨울」(상·하, 한마음사간).
불행은 어깨동무하고 온다던가. 딸의 임신과 가출, 아들의 퇴학, 남편의 식은 애정과 외도.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목을 죄는 죽음의 그림자. 마흔다섯살의 주부 은수는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절망적 고통에 통곡하다가 자진한다.
이 소설을 보면 「고생도 인생」이라 여기고 살았던 우리네 어머니들의 초상을 만나게 된다. 슬픈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을 잃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가난한 은행원 은수는 가진 거라고는 몸 하나뿐인 건설회사 직원과 사랑에 빠진다. 어머니는 자신이 겪은 가난에 몸서리치며 딸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두사람은 미래의 행복을 확신하며 작은 절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남편은 생계의 돌파구로 중동 건설현장 근무를 자원한다. 10여년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기고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들은 어느덧 중산층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긴 이별의 세월은 이미 그 가정에 치유되기 힘든 균열을 만들어 놓았다. 서로를 깊이 인식하지 못하고 겉도는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허탈감에 몸부림치는 은수. 그 가운데 은수는 악성 종양에 걸리고 모래알처럼 떠돌던 가족들은 제각기 깊은 방황의 늪에 빠진다.
결국 은수의 죽음으로 끝나는 소설 「아내…」는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묵직하게 전하면서, 날렵하고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70∼80년대의 혼란한 사회, 민중과 권력의 투쟁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상처받은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능히 그 후유증과 아픔을 짐작케 한다.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단단한 구성과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어머니와 주인공, 남편 그리고 두 아이까지 다양한 세대의 캐릭터에 몰입해 각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분석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다. 유행성 출혈열에 걸려 죽을뻔 했던 작가는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의 절망적 상황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지씨는 『나라의 삶과 개인의 삶은 닮아 있는 듯하다. 정치가 오랫동안 죽어 있으면서 우리 사회를 관철하는 정신이 없었고, 많은 개인과 가정이 그 영향을 받아 방황하고 있다』고 작품을 구상하게 된 동기를 말했다. 그는 또 『그러나 그 속에서 절망하기 보다는 아직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화제의 소설 「아버지」가 가장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아내…」는 그러한 고통이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 모두의 것이고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킨다.<권오현 기자>권오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