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개편 “한국판 빅뱅” 신호탄/고금리 해소 경쟁력 강화 목표/재벌입김 배제여부가 관건될듯김영삼 대통령이 직속 자문기구로 금융개혁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것은 노사개혁조치 수준의 강도높은 금융개혁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에따라 은행 증권 보험 종금 등 전 금융기관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해졌다.
금융개혁의 방향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정부는 80년대부터 금융개혁조치를 단행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으나 금융권의 반대와 대통령의 정책의지 결핍, 개혁에 따른 부작용심화 등으로 백지화하고 말았다.
금융개혁 방향은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 ▲은행 증권 보험 리스 종금 등 업무영역개편 ▲금융산업 전반에 걸친 자유화조치 ▲인원감축을 통한 생산성 제고 ▲은행장인사 등에 대한 정부간섭 배제 ▲감독강화 등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내용은 인수합병을 통한 대형화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은행합병에 직접적으로 간여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정부의 이 원칙은 이번에도 지켜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은행들이 합병하지 않으면 안되는 방향으로 금융산업의 여건을 조성, 스스로 대형화의 길을 걷도록 강력 유도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부당국자들과 금융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금융산업을 주도해나갈 「리딩 뱅크」 또는 「수퍼은행」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는 기존의 시중은행을 2∼3개 통페합해야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또 금융기관의 업무영역 개편도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은 은행 보험 증권 종금 리스 신용금고 등으로 엄격히 구분되어 있다. 소위 전업주의체제다. 그러나 세계금융시장은 한 기관이 이들 업무를 동시에 취급하는 방향(겸업주의)으로 개편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이 증권 보험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겸업주의 칸막이가 어느정도 허물어질지는 아직 모르지만 기존의 겸업주의체제가 개선될 경우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여기에다 각종 자유화조치가 강도높게 취해질 경우 금융산업의 판도가 완전히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그야말로 「한국판 빅뱅」이 일어나리라는 것이다.
김대통령이 임기말년에 금융개혁이라는 난제중의 난제를 풀겠다고 선언한 것은 금융개혁 없이는 고금리해소가 불가능하고 고금리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경제체질강화를 구조적으로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금리해소는 역대정부의 최대과제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채동결이라는 초법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5, 6공 정부때도 금리인하가 주요정책과제였으나 백년하청에 머물고 말았다. 금융산업의 구조상 기존의 정책수단으로는 금리인하에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할 금융개혁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금리해소를 통한 기업의 경쟁력강화인 만큼 이런 취지에서 금융정책 전반에 걸쳐 메스가 가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발독재시절의 관치금융구조를 완전히 혁신하리라는 전망이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관치금융의 분위기에 빠져 있는 재정경제원 등 공무원들의 간여를 배제할 방침이다. 금융의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에서 금융산업의 구조를 다시 짜기 위해서는 공무원배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민간기업인들이 금융개혁의 틀을 디자인하게 한 다음 공무원은 이 디자인을 실천하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정부가 이같이 민간위주로 금융개혁을 실시할 경우 돌출될 수 있는 문제는 재벌이다. 영국의 경우 빅뱅이라는 금융개혁을 성공시켰고 일본도 시동을 걸었으나 영국과 일본에는 재벌문제가 없다. 재벌문제는 한국 고유의 정치·경제적 문제다. 재벌은 한국의 기업을 대표하고 있어 민간기업의 의사는 곧 몇몇 재벌의 의사나 마찬가지다. 금융개혁이 완전히 민간위주로 추진될 경우 재벌의 금융산업지배를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금융개혁에서 재벌의 입김을 어떻게 막느냐가 금융개혁 성공의 한 요인이 될 것이다.<이상호·유승호 기자>이상호·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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