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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비취 선생님/송혜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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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비취 선생님/송혜진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1000자 춘추)

입력
1997.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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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년, 어디 행랑어멈 같은 발을 가지고 여기엘 다 나왔느냐. 집으로 가거라』소리꾼이 되려고 조선정악전습소 여악분실이라는 곳에 응시하던 날, 예인이 되려는 꿈을 안고 서있는 아이들의 버선발 맵씨를 심사하던 학감 하규일 선생은 여러차례 언성을 높이며 아이들을 돌려 보냈다. 「안된다고 하면 어쩌지, 소리꾼이 되려고 가출까지 한 몸인데, 여기서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하며 마음을 졸이는데 다행히 선생께서는 안비취 앞을 그냥 지나쳤고, 그밖의 이런저런 시험과정을 거쳐 마침내 공부의 길이 열렸는데…. 하규일 선생은 어찌나 성격이 매섭고, 입이 험하신지 춤과 노래공부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범절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는 걸 그냥 넘기신 일이 없어 무서웠노라고, 지난 3일 작고하신 경기명창 안비취 선생은 지난해 여름 내가 진행하는 방송에 나오셔서 이렇게 국악 입문기를 회고하셨다.

안비취 선생은 아직도 인생이 창창하다고 느끼던 어느날 갑자기 쓰러진 후, 음악인생을 무대에서 정리해야 한다는 집념으로 몸을 웬만큼 추스린 끝에 방송에 나오신 것이었다. 전체 5∼6회나 거듭된 인터뷰에서 안비취 선생은 조선정악전습소 여악분실에서 공부할 무렵 하규일 선생 몰래 「잡가」를 배우러 다니다 들켜 동학들 앞에서 곤장을 맞고도 배우고 싶은 잡가를 포기하지 못한 이야기이며, 생전 처음으로 방송출연을 하게 되었을 때 『마이크에 절을 해야 장차 명창이 된다』는 대금연주가 김계선 명인의 우스개를 진담으로 알아 듣고 오로지 명창이 되고 싶다는 일념으로 정성을 다해 마이크에 절을 하고 한동안 놀림을 당한 이야기등을 들려 주시는데, 그 천진스런 웃음이 참 보기 좋았었다.

비록 병중이긴 하나 부드럽고 정 깊어 보이는 표정과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오는 동안 굴곡도 적지 않았을 그 삶을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살아 좋았다』는 담백한 말씀으로 정리하시더니, 이 혹한 중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병든 육신의 옷은 벗고, 그 혼은 물총새처럼 가뿐히 비상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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