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최고령 인간문화재 장용수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최고령 인간문화재 장용수옹

입력
1997.01.07 00:00
0 0

◎‘북녘 고향 숨결’ 은율탈춤에 바친 한평생/어린시절 사로잡았던 신명나던 춤판/월남후에도 잊지못해 놀이꾼 찾아나서/가산 쏟으며 복원작업 맥이었지만…/남은건 허름한 간이침대서 쓸쓸한 노년/“젊은이 발 못붙이는 현실이 안타까워”『모든 것이 정신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는 세상이야. 은율탈춤 만큼은 이런 변화에 물들지 않도록 한 평생을 다 바쳤어. 원형을 잘 보존하고 그것을 후손에게 꼭 물려 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 이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어. 힘도 없고 기억도 감감해지고, 없던 병까지 생겼으니…』

중요 무형문화재 제61호 「은율탈춤」 예능보유자 장용수(94)옹. 48세이던 51년 1·4후퇴때 아내와 1남3녀를 데리고 빈손으로 월남한 이후 고향의 탈춤문화를 복원·전승하기 위해 애써 모은 가산까지 모두 쏟아 부은 은율탈춤의 산 증인이다. 현재 은율탈춤에 쓰이는 탈과 소도구, 의상 등은 모두 그가 직접 만들거나 그의 지도 아래 만들어 졌다. 그는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 가운데 최고령이다.

인천 남구 숭의4동 수봉공원 중턱에 자리잡은 은율탈춤 전수회관. 지하 1층, 지상 2층의 콘크리트 건물 현관에 들어서면 1.5평 남짓한 사무실이 있다. 장옹은 여기에서 기거한다. 두번씩이나 상처를 하고 15년전 세번째로 맞은 부인(71)이 회관 지하실에 살고 있지만 하루 세끼 식사 때를 빼고는 거의 지하실에 내려가지 않는다.

취재팀이 회관을 찾은 2일 낮 12시. 허름한 점퍼와 누비바지 차림의 그는 전기난로를 마주한 채 조그만 간이침대 위에 힘없이 앉아 있었다.

침대 위에 놓여 있는 두툼한 약봉지들이 그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맥이 끊길 뻔한 전통문화를 복원·전승하려고 노력한 대가치고는 너무도 쓸쓸한 모습이다.

어린시절 그의 고향에서는 신명나는 춤판이 자주 열렸다. 4월 초파일, 5월 단오, 7월 백중에는 어김없이 탈춤판이 벌어졌고 날이 어둑어둑해 질 무렵 원형의 야외무대에서 놀이가 시작되면 자정이 돼서야 끝났다. 놀이꾼은 대부분 어렵게 생활했으나 신명이나 재능이 남달리 뛰어난 한량이었다는 게 장옹의 기억이다.

그는 고향에서 탈춤을 직접 추지는 않은 대신 주로 농악대의 대장노릇을 했다. 재능이 뛰어나서라기보다는 놀이를 워낙 좋아했고 무엇보다 놀이꾼들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한 덕분이었다. 7세때 아버지를 여읜 뒤 생계를 꾸리기 위해 시작한 냉면장사가 잘돼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없었다. 양조장을 갖고 있던 누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는 배고픈 탈놀이꾼이나 농악대원에게 술을 받아 주거나 자신의 가게에서 냉면을 대접하면서 사기를 북돋웠다.

『월남후 한동안 천안에서 농사를 지었지. 고향의 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어. 키우던 돼지를 팔아 고향 출신의 놀이꾼을 찾으러 인천에 뻔질나게 올라 왔어. 인천에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이 많거든.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을 시작했지. 주위에서는 황해도 탈춤 가운데 봉산탈춤과 강령탈춤이 이미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기 때문에 은율탈춤은 힘들 것이라며 많이 말렸어.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내 생각은 달랐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것보다 2세들에게 고향의 문화를 물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했거든』

69년 장옹 등 황해도 출신 실향민 5명은 「은율탈춤 보존회」(032-875-9953)를 결성했다.

탈춤은 인천에 거주하는 20여만명의 실향민들에게 고향의 숨결이자 전통문화의 뿌리로 받아 들여져 급속하게 퍼져 나갔고 78년 2월 중요 무형문화재 61호로 지정받기에 이르렀다. 보존회는 현재 일반회원에게 주 3회 6개월 과정으로 기초동작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동안 2,0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은율탈춤의 예능보유자로는 장옹 외에 김영택(56) 김춘신(52·여)씨가 있고 민남순(57·여)씨는 보유자 후보로, 변동원(44) 차부회(38·은율탈춤 보존회 총무)씨는 각각 조교로 등록돼 있다.

나이 탓에 탈놀이에는 나서지 못하지만 제자들의 연습 때 가끔씩 장단을 맞춰주는 장옹. 장구를 치는 손놀림만은 아직도 날래다. 그의 기쁨은 단순하다. 『제자들이 아직 연륜이 짧아 능숙하고 세련된 기예를 보여주지 못하지만 우리 것을 배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

걱정도 많다. 『재능이 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생계 때문에 직장에 매달릴 수 밖에 없어서 문제야. 보유자로 지정되면 월70만원이 나오는데 나같은 늙은이는 괜찮아. 애들 키우고 돈 쓸데가 많은 사람은 사정이 다르지. 그러다 보니 프로도 아니고 아마추어도 아닌 어정쩡한 전수자가 생길 수 밖에…』<김성호 기자>

◎은율탈춤이란/민속극원형 잘 간직한 황해도탈춤 일종

황해도는 예로부터 탈춤과 소리 등이 성했던 고장이다. 전문가들은 『황해도 탈춤은 대사, 의상, 춤추는 법 등에 따라 크게 봉산탈춤형과 해주탈춤형으로 나눠지는데 은율탈춤은 두가지 유형의 상호교류와 영향관계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황해도 탈춤 형식』이라고 분석한다.

탈놀음의 과장(판소리의 「마당」에 해당) 순서나 극본 내용은 봉산탈춤보다 해주탈춤에 가깝고 의상은 대개 봉산탈춤과 비슷하나 양반이 삿부채(초선)를 드는 것이 색다르다.

또 탈은 봉산탈 해주탈 등과 비슷한 것이 많으나 노승탈이 검지 않고 흰 것이 독특하다. 또 다른 탈춤이 노래를 가사에서 빌려 쓰는 예가 많은 반면 은율탈춤은 민요를 많이 이용한다.

요사스런 귀신을 쫓는 의식무가 들어 있고 파계승이나 양반에 대한 풍자, 일부처첩의 삼각관계와 서민생활상 등을 주제로 삼은 것은 다른 탈춤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말의 맛을 살린 구수한 재담이 꼽을 만하고 적나라한 표현이 그대로 살아 있는데다 비교적 늦게 발굴됐기 때문에 민속극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은율탈춤 제6과장 「미얄할미 영감춤」은 할멈이 팔도유람을 떠난 영감을 찾아 다니다 서로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할멈은 반가움에 겨워 「나니가 타령」을 부르며 교태를 부린다. 순간 영감의 첩인 뚱딴지댁이 나타나 먼저 영감의 품에 안긴다. 할멈과 뚱딴지댁은 서로 자기 영감이라고 우겨 댄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최괄이와 말뚝이가 본부인 여부를 가린다.

최괄이: (뚱딴지댁에게 물으며) 영감의 특점을 말하시오.

뚱딴지댁: 우리 영감 밥 잘 먹고 무엇이든지 무던하고 착한 것이 특점이오.

할멈: 우리 영감은 그것이…(머뭇거리다가) 불알은 네쪽이고 O대가리에 콩알만한 사마귀가 돋아 있어 잠자리에서 뼛골이 살살 녹습니다. 그것이 특기요.

최괄이의 확인결과 할멈의 말이 진실로 밝혀 진다. 화가 치민 뚱딴지댁은 할멈의 뒷덜미를 내리쳐 즉사시킨다. 영감은 할멈을 극락세계로 보내기 위해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

◎인간문화재 대우는…/생계비 못미치는 월 70만원 고작/보유자 추천 전수생엔 10만원씩 지원

보통 인간문화재라고 불리는 중요 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가 되면 어떤 대우를 받게 될까.

우선 정부로부터 매월 전승 지원금을 받는다. 문화재보호법 24조와 시행령 19조 1항에 따라 96년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는 월 65만원을 받았다. 올해는 70만원으로 인상됐다.

인간문화재는 아니지만 이들의 기술을 전수받거나 보조하는 사람들에게도 전승 지원금이 지급된다. 지금까지 보유자 후보는 32만원, 조교와 보조자는 20만원을 받았으나 올해부터는 이 또한 약간 올라 보유자 후보는 월 35만원, 조교와 보조자는 25만원을 받게 됐다.

보유자외에 보유단체에 판공비 형태로 지급되는 지원금도 35만원에서 40만원, 공예 등 일부 취약 종목에 지급되는 특별장려금도 월 10만원에서 15만원으로 각각 인상됐다.

따라서 특별장려금을 받는 중요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의 경우 전승지원금 70만원을 포함, 총 85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보유자가 추천하는 학생들에게는 전수장학금 10만원(단체는 20만원)이, 보유자가 타계했을 때는 70만원의 장례보조금이 지원된다.

이밖에 보유자들은 정부에서 수술비 등을 전액 지급하는 의료보호증을 발급받고 공연이나 행사를 할 때도 비용이 전액 지원된다. 전수교육 교재 제작이나 각종 장비를 구입할 때도 정부에서 비용을 지급하고 정부에서 매년 한번씩 보유자들의 작품을 구입해 박물관 등에 전시를 한다.

특히 중요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만든 작품의 값은 일반 기능보유자의 작품보다 수백배까지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중요 무형문화재 지정을 둘러싸고 금품이 오가는 등의 말썽이 일기도 했다.<조재우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