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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적게 분배받더라도/김재순 가톨릭대 부총장(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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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적게 분배받더라도/김재순 가톨릭대 부총장(화요세평)

입력
1997.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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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주의는 선택과 도태의 원리/인간 사이 갈라놓고 공동체마저 파괴작년 가을 이래 「아버지」를 소재로 하는 소설과 TV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와 소설의 아버지는 자녀나 아내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 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 아버지는 강한 아버지가 아니라, 약하고 안쓰러워 사람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한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권위의 상징이었고, 사회로 통하는 창이었으며, 그 지위는 바로 가정의 사회적 위상을 나타내었다. 그 아버지들의 권위가 반드시 그들의 경제력에 의해서 지탱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의 중추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꿋꿋해야 할 아버지의 신세가 말이 아니게 어려워졌다. 아버지의 권위의 추락은 아무래도 최근의 경제불황 속에서 그 경제적 지위에 심대한 불안정이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연말 국회를 통과한 노동관계법은 우리 아버지들의 신세를 더욱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운동의 선두에 서 있어서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혼신을 기울여야 하는 일이라도 있어서 차라리 떳떳하리라. 「명예퇴직」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으로 직장을 쫓겨난 아버지가 딸의 결혼식의 혼주가 되어야 한다면 그 심정은 얼마나 괴로웠을 것인가.

작년 이래 우리의 경제 사정은 매우 좋지 않다. 또 이러한 경제위기는 우리 산업구조의 「고비용 저효율」에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가 노동관련법을 바꾸는 이유도 지금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지는 않는지 매우 걱정스럽다.

우리는 아직도 초고속 성장의 신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연간 6∼7%로서 중국 등 동남아시아의 몇나라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는 아직도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나는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저성장시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될 소비의 축소와 일의 부족을 공평하게 나누고 부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형성의 필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들은 경제위기를 산업의 구조조정의 기회로 생각하고 있으나, 나는 오히려 이 기회에 우리 사회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사회 발전의 구조를 다시 조정할 것을 주장하고 싶다.

산업의 구조 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 사회불안과 인간관계의 위기, 사회 통제의 강화, 민주주의의 후퇴, 가족 및 공동체 의식의 붕괴 등 사회적 비용은 막대할 것이며, 그 부담은 모두 우리 국민들이 져야할 것이다.

우리는 조금 느리게 성장하고 조금 적게 분배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안정된 가정 생활, 자연과 교감하는 환경친화적인 지역사회,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문화, 인간성이 살아있는 직장,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발전의 목표로서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보다 고도의 경제 성장을 위해 생활과 환경, 문화와 사회를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영역에 있어서의 무한 경쟁주의는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선택과 도태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다. 무한 경쟁주의는 인간의 사이를 갈라놓고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며,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역동성을 내장하고 있다. 능력이 없는 「아버지」가 도태되고, 시장적 기능이 없는 여성은 밀려나고, 배우지 못하거나 기술이 없으면 쓸모없는 존재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자연생태계를 포함한 생물학적인 약자들의 보전, 가난하고 능력없는 약자들과의 사회적 연대의 강화, 인간의 기본 권리의 보장이야말로 우리 사회발전의 기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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