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의 자화상을 연구해 온 독일 문필가 마누엘 가써는 『자화상이란 인간으로서, 미술가로서의 자기 자각의 꼭대기에 섰을 때 이루어지는 것으로 자화상에서 우리는 단순한 초상을 넘어 그것이 만들어진 한 시기의 모든 것,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람 생애의 전체상을 본다』고 갈파했다. 자화상에는 자기의 가식없는 얼굴은 아닐지라도 같은 시대나 후세의 사람들이 보아주었으면 하는 얼굴이 그려져 있다. 우리는 그 얼굴에서 작가를 읽고, 자기자신을 살펴나갈 수 있다. 자화상을 본다는 것은 자기를 찾아 떠나는 색다르고 의미깊은 여행인 까닭이다. 네오클래식은 국내외 유명화가들의 자화상 시리즈를 시작한다. 집필은 미술평론가 최석태씨(38)가 맡았다.자화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이다. 평생 한 점의 작품도 팔아 본 적이 없다고 할 만치 인정을 못받아 더 할 나위 없이 고독했으나,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 준 동생 테오가 있어서 풍족하게는 아니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고흐.
그런 그가 우여곡절을 거쳐 화가가 되었고 친구인 화가 고갱과 같이 프랑스 남쪽 아를르에서 생활하다가 다툼이 생겨 자신의 귀를 자른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놀랄만한 사실은 기실 귀를 붕대로 싼 모습이 그려진 2점의 자화상 때문에 우리의 뇌리에 깊이 새겨진 것이 아닐까? 이 독특한 모습에서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표정이 너무나 평온하다는 점이다. 노동자나 농민과 같이 투박한 외투를 걸치고, 다친 귀 아래위로 머리를 한바퀴 두른 흰 붕대와 이를 감추기 위해 둘러 썼을 털모자가 어우러진 모습은 궁상스런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태평스런 표정에 담뱃대까지 문 느긋한 모습이다.
이 그림에 앞서 그린 듯한 똑같은 복장의 자화상에서는 배경에 자신이 좋아하고 연구한 일본 에도시대의 화려한 다색판화(우키요에)를 붙여서 자기 작업의 궁극적인 도달점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나 볼과 턱이 뽀족하여 불안해 보이며, 흰 붕대로부터 오른쪽의 얼굴로 그늘이 져 있다. 외투에도 얼굴과 목깃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서 그림자가 없는 것이 특징인 동양 미술의 한 갈래로서의 일본 미술의 세계에 이르려는 의도와 엇갈리고 있다.
이 그림에서 외투는 거칠게 검은 윤곽선이 둘러져 평면화했으며 바탕색은 더욱 순수한 풀빛을 띠었고, 얼굴을 비롯한 요소들은 앞의 것과 달리 명암 표현이 배제되어 그늘과 그림자가 사라졌다. 배경 아래 부분은 붉게, 윗 부분은 노랑이 더해져 순하게 된 주황빛을 이루어서 그림 아래 부분의 녹색 외투와는 보색의 안정감을 이루었다. 게다가 코에서 나온 연기는 그림의 윗부분에까지 이르도록 하여 안정감이 더욱 강조되어 보인다.
나무, 하늘, 밤하늘의 별까지도 타오르는 듯한 소용돌이로 몰아 그렸던 정열과 투지. 몰인정과 곤란 속에서도 농부와 같은 성실과 박애를 실천하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을 즐겨 그렸던 고흐. 그는 이 그림을 그린 뒤 2년후 스스로 생애를 마감했다. 네덜란드에서 나서 유럽 각지를 전전하면서 인생의 온갖 역경을 거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온 힘을 다해 달려온 지 10년.
유채화 900점 가량과 그 2배 가량되는 소묘와 특히 동생에게 끊이지 않고 써보낸 700통 가량을 편지를 남기고 그는 갔다. 그가 남긴 흔적들은 새로운 삶과 예술을 제시하는 데에서 모든 예술을 통털어 가장 생생하고 격렬한 증거이다.<최석태 미술평론가>최석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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