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화가 박호신의 ‘길에서 쓴 그림일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화가 박호신의 ‘길에서 쓴 그림일기’

입력
1997.01.06 00:00
0 0

◎이 땅의 삶·풍경 애정의 눈길로/방방곡곡 발로 누비며 이름없는 사람·들꽃 등을 따스한 시선에 담아/‘읽는 재미와 보는 즐거움’그는 책머리에 『현장답사를 다니며 길눈이 밝지 못한 탓에 그곳의 지리와 문화, 그리고 당시의 정황을 밑그림과 함께 차 안에서 메모하여 화실에 돌아와 포개두곤 했던 것을 책으로 묶게 됐다』고 출간의 뒷사정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상투적인 겸양어구로 읽히지 않는 것은 이 책이 「사랑한 만큼 그릴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일일이 찾아가서 발로 밟아보고,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느낀 후에야 붓을 드는 치열한 작가정신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길은 북으로 휴전선에서, 남으로 진도까지, 이름없는 풀꽃들, 나무들에 이르기까지 두루 미친다. 요컨대 이 책은 방방곡곡을 발로 누빈 지은이의 작업일지이고, 온갖 이름없는 사람들과 사물들의 인문지리지다. 지은이는 『제목을 굳이 「길에서 쓴 그림일기」라고 붙인 것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견 한국화가 박호신의 「길에서 쓴 그림일기」는 세 갈래로 나뉘어져 있다.

제1부 「길에서 만난 삶의 풍정」은 남루하지만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이 땅 이름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강원도 오지에 몸을 숨기고 사는 귀순자 출신 리영광씨, 귀틀집에서 벌을 치며 살아가는 신혼부부, 정선 아라리로 유명한 아우라지강의 뱃사공 등 사연 많은 인생들에게 보내는 지은이의 시선이 따스하다.

제2부 「아름다운 자연, 생명의 노래」는 이 땅 구석 구석의 자연과 환경에 관한 글 모음. 털중나리, 노루귀, 세바람꽃, 애기 똥풀 같은 우리 고유의 꽃·풀 들과 아직은 문명의 손을 타지 않은 산야의 아름다움이 그려진다.

제3부 「땅의 숨결과 문화의 향기」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답사기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기행은 최근 들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진 문화유적 답사기행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화가인 지은이에게 선현들의 삶과 노래와 그림이 응축된 현장은 『오늘의 풍광, 진경을 그리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더없는 사례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주는 또 하나의 작업 현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책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지은이의 가장 내밀한 예술적 체험까지도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큼 알기 쉽게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지은이의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과 필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이 책은 비단 「읽는」 재미뿐 아니라 「보는」 즐거움도 준다. 애초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그림기행을 시작했다는 지은이의 말처럼, 책 갈피 갈피에 자리잡은 300여 장의 그림은 그 하나 하나가 작품이다. 그것들은 때로 사진의 정밀함을 훌쩍 뛰어넘어 사람과 사물의 속내를 우리 앞에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지은이는 대영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는 중견 화가다.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에서 좋은 글과 그림을 한꺼번에 만나는 드문 행운을 누리는 셈이다.<황동일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