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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2번 버스 강봉권씨(선데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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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20­2번 버스 강봉권씨(선데이 스토리)

입력
1997.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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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팬클럽도 생긴답니다”/못말리는 DJ기사/음악과 친절·유머 어우러진 “달리는 방송국”/“늙었을때 대비해 저축” 자리양보 방송 압권『승객 여러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시고 정축년 새해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십시오』 정류장 안내를 해주면 고맙고 욕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인 버스에 익숙한 승객들은 곡선길과 지하철역을 미리 알려주고 직접 녹음한 음악까지 틀어주는 버스기사가 반갑다. 앳된 얼굴에 까만 제복을 즐겨 입는 강봉권(29)씨는 헤드마이크를 끼고 생방송을 하는 DJ버스기사. 강씨는 상계동―창경궁을 운행하는 한성버스(주) 20―2번 서울74 사6328호를 95년 12월부터 운전하고 있다.

승객들은 강씨의 방송과 멘트를 들으려고 일부러 그의 버스를 탄다. 서울 H여고 학생들은 팬클럽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Y여고 김모(17)양은 지난 해 1월 강추위 속에 강씨의 버스를 기다리다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처녀들이 두 아이의 아빠인 줄 모르고 프로포즈할 만큼 강씨는 「인기DJ」가 됐다.

그의 버스는 「경로당버스」이다. 『젊은 분은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이를 동행하셨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십시오. 젊은이도 언젠가는 늙는 법, 「늙었을 때를 위해 저축한다」 생각하고 일어나 주십시오. 저의 부탁을 무시하거나 경로석에 앉아 계신 젊은 분은 응분의 조치를 당하게 됩니다. 응분의 조치란 뒷문에 끼든지 말든지 신경 안쓰고 출발하거나 종점까지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강씨가 운전대를 잡게 된 것은 88올림픽부대에서 복무할 때 운전병을 한 것이 인연. 제대 후 승용차, 택시기사로 일하다 92년 장위동―영등포역을 다니는 48번 상진운수에서 근무했다. 작은 차만 운전하다 버스를 몰자 안전사고가 잦았다. 급정거·급출발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승객이 많자 강씨는 안내방송을 생각해 냈다. 처음엔 『아, 아, 마이크 시험중』이라는 말만 하고 쑥스러워 그만두곤 했지만 차차 자신과 가속이 붙었다. 농담도 하면서 승객들과 한바탕 웃고 나면 피로가 가셨다.

회사동료들이 『기계가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물어도 강씨는 『눈 오는 날과 맑은 날, 첫 차와 막차 등 그 때마다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방송을 하느냐』며 생방송을 고집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승객들이 『손자사위 삼고 싶다』고 할 때 곤혹스럽다는 그의 소망은 일본의 MK택시회사보다 더 친절하고 편안한 버스회사를 차리는 것이다.<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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