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부경찰서에 새해 벽두 3일간 백기가 내걸렸다는 뉴스는 참 반가웠다. 백기게양은 관할지역에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기념하는 경찰의 관행이다. 구속처벌을 받아야 할 형사피의자는 물론, 죄질이 가벼워 구류를 사는 보안사범 한 사람도 없어 유치장이 텅 비었다니 서울 한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1945년 8월 이 경찰서가 생긴 이래 처음이요, 근래 수도서울의 치안역사에도 드문 일이다.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서대문 마포 서부 은평경찰서 등 서울시내 4개서를 관할하는 서울지법 서부지원에도 연휴동안 구속영장 신청이 한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1일부터 처음 실시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출근한 판사는 『새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 올해는 좋은 한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경찰서 당직형사는 평소에도 주말이나 휴일에는 술취해 싸운 사람들로 형사계 사무실이 붐볐으나 이번 연휴에는 폭력사건이 거의 없었다며 『형사생활 20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한다.
서울 한가운데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새해 첫날의 서설처럼 분명히 반가운 소식이다. 유흥업소들이 강남지역으로 옮겨갔다고는 해도 중부경찰서 관할 지역은 명동 충무로같은 전통적인 유흥가를 끼고 있고 시장과 백화점들이 몰려 있어 사람이 들끓는 서울의 중심지이다. 4개 경찰서를 관찰하는 법원의 영장담당판사가 할 일이 없었다는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변이다.
불경기와 혹한 빙판길 등으로 나들이 인구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시행된 구속영장 실질심사제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하고 싶다. 연휴기간중 전국 법원에서 처리된 구속영장 신청사건은 136건이었는데 이중 28%인 38건이 기각됐다. 7%이던 종전의 영장기각률과 비교하면 구속자수가 4분의 1로 줄어든 셈이다. 며칠째 경찰서에 백기가 내걸린 것처럼 구속자 격감은 사건처리과정에서 인권이 그만큼 신장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가지 작은 걱정은 새 제도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법원이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만을 형사사건 피의자 구속의 잣대로 삼는 경향이 굳어진다면 상대적으로 그들의 구속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피의자들을 법원으로 호송하는 일이 늘어나 경찰인력이 달리고, 폭행사건 교통사고 등의 피해구제가 어려워질 현상도 당장 해법을 찾아야 할 문제로 지적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용이 이상을 따르지 못하면 없는 것만 못하다. 수사기관과 법원측은 머리를 대고 이런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기에 바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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