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만평 초원에 소 4,000두/한국인 책임자·현지목부 4명이 경영/내년까지 ‘1억평·1만두’ 확장 계획/질 좋고 값싼고기로 수입개방에 대비호주 내륙의 드넓은 초원에 우리의 소와 곡물이 자란다.
시드니에서 북서쪽으로 비행기로 1시간을 날아가 다시 자동차로 1시간 가량 달리면 뉴사우스 웨일스주 윌로트리의 「와라(Warrah)목장」이 나온다. 서울 여의도의 20배에 달하는 1,730만평의 평원과 구릉에는 4,000두의 소가 곳곳에 흩어져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고 다른 한켠의 150여만평에는 밀 보리 수수가 자라고 있다. 말이 1,730만평이지 사방으로 지평선을 넘어서까지 모두 목장이고 관리인들조차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광활하다.
이 목장의 소유주는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7월 1,300만 호주달러(약 87억원)를 들여 160년 전통의 이 목장을 호주인으로부터 매입했다. 현지 정부 또는 기업과 합작설립한 다른 해외 농축산단지와는 달리 생산과 판매 등 운영상의 모든 권한과 책임이 삼성물산에 있다.
이 일대의 자연조건은 농축산단지 조성에 그지없이 좋다. 「와라」가 호주 원주민 말로 「비가 많이 내리는 곳」이라는 뜻이듯 연간 강수량이 호주 전체 평균을 웃도는 650∼850㎜에 달해 소 사육과 작물 경작에 안성맞춤이다. 취재팀이 목장을 방문한 지난해 12월 17일에도 여름 가뭄속에 10여일만에 단비가 내려 관리인들은 희색이 만면했다.
이 곳의 토지는 비옥하기로 소문난 현무암 토질인 「블랙바살트」이고 그 위에 단백질을 많이 함유한 「알팔파」를 옮겨 깔았다. 또 한겨울에도 영상의 기온과 적당한 습도가 유지돼 들판의 풀이 마르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 자란 헤레포드, 앵거스, 머레이 그레이 등의 소는 하루에 몸무게가 무려 1.5㎏이나 늘어난다고 한다. 때문에 320∼350㎏의 중소를 인근 거네다 경매장 등에서 사와 500㎏짜리로 키워 시장에 내다파는 데 150일이면 충분하다. 더욱이 소를 축사에 가둔 채 살을 찌우는 비육방식이 아니라 사시사철 초원에 풀어 놓고 방목하는 덕분에 육질에 지방이 아주 적다고 관리인들은 자랑했다.
목장부지를 구입, 조성하는 데 든 비용은 970만 호주달러 (약 64억원)로 평당 300원이 조금 넘는 정도이다. 호주에서는 목장운영 허가를 얻는 일도 어렵지 않다. 외국인 투자위원회(FIRB)의 심사를 거쳐야 하지만 환경오염 방지시설만 어느 정도 갖추면 될 정도여서 사실상 제약이 없다. 이곳 책임자인 김명수(36) 과장은 『호주는 농축산단지의 천국』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목장 주변의 땅이 부동산 시장에 나오는 대로 사들여 98년까지 목장을 1억평규모로, 사육두수도 1만두로 늘릴 계획이다.
조만간 시장에 식육용으로 출하될 소는 대부분 호주 현지에서 판매된다. 현재 국내 육류시장의 개방폭이 좁아 아직 국내에 반입할 통로는 확보되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육류시장이 완전 개방되면 저렴한 가격에 질좋은 고기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는 것이 삼성물산측의 계산이다. 호주의 500㎏짜리 소 한마리는 500호주달러(약 33만원)에 불과해 유통마진과 관세를 합쳐 봐야 쇠고기 값이 국내가격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한편 장기적으로 국내 수입쇠고기 시장이 몇몇 국제 축산메이저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막고 안정적인 쇠고기 공급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회사측은 보고 있다.
밀 보리 수수 경작은 소 사육의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부대사업으로 파종과 제초작업, 수확은 장비와 사람을 계약고용하는 형태로 행해진다. 지난해 12월16일 밀 22톤을 첫 출하했는데 톤당 170호주달러였던 밀값이 120달러로 떨어져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 드넓은 목장을 김과장과 현지인 목부 4명, 소몰이용 콜리종 개 5마리가 관리한다. 매니저인 저스틴 오너(45)씨는 목부 경력 23년의 베테랑으로 이 분야에서는 보기드문 농업경영 전공의 대학졸업자다. 그는 『목장 입지 등 조건이 훌륭해 한국의 이번 투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낙관했다.<윌로트리(뉴사우스 웨일스주)="유성식" 기자>윌로트리(뉴사우스>
◎험난했던 해외농축단지 개발사/78년 아르헨티나·81년 미국 진출 준비부족 좌절 경험
우리나라의 해외 농업단지 개발은 정부주도로 70년대 시작됐지만 출발은 매우 험난했다. 정부는 78년 아르헨티나 야타마우카에 서울시의 3분의 1,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달하는 6,300여만평의 농장을 10만 달러에 사들였다. 이를 교포들에게 분양해 현지 정착을 지원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 계획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사전에 토양 및 지질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계약후에야 쌀 밀 콩 등 곡물재배가 불가능한 척박한 땅으로 판명된데다 교민들도 농사를 기피하고 도시로 빠져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외에 아르헨티나의 산하이비엘과 루한, 칠레의 테노, 파라과이의 산페드로 등지에도 농장을 구입했으나 비슷한 이유로 실패하고 매각처분해 버렸다.
현재 야타마우카 농장은 19년째 방치돼 있다. 이 농장의 관리를 맡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KA)은 줄곧 매각을 모색해 왔으나 농장지가가 매입 당시보다 50%이상 떨어진 50만달러 수준에 불과한데다 그나마 희망자가 나서지 않아 그대로 끌어 안고 있는 상태다. 또 이를 개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도로와 수로 등 기반시설을 갖추는 데 600만∼700만달러가 소요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때 선경 건국대 동원 등이 매입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정부에 개발보조금 지원 등의 조건을 내세우는 바람에 번번이 무산됐다.
이에 따라 KOIKA는 최근 밀림지역을 제외한 2,700만평을 교민과 현지인 및 국내 기업 등에 3분의 1씩 나눠 장기 무상임대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KOIKA관계자는 『현지 컨설팅회사의 조사 결과 이 땅은 염분이 많아 쌀 등의 경작은 불가능한 대신 초지가 발달해 있어 소와 양을 키우거나 옥수수를 재배하기에는 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민간기업으로는 선경이 81년 미국 워싱턴주에서 990만평의 옥수수 농장을 운영한 것이 최초다. 그러나 미국 곡물메이저 업체의 조직적 방해와 곡물저장 시설의 미비 등으로 4년만인 85년에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선경은 농장을 조성하면서 외화유출 시비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농업투자는 90년대 들어 「북방길」이 트이면서 본격화했지만 이런 전례에서 보듯 사업의 장래를 낙관할 수 만은 없다.
◎영락없는 카우보이/와라목장책임자 김명수 과장/부임 5개월만에 능숙한 소몰이/육류평가사 등 자격증도 5개/“외로움보다 개척자 재미가 더 커”
『2억만리 타국에 홀로 떨어져 외로움도 크지만 전인미답의 분야인 만큼 흥분과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호주 윌로트리 와라목장의 광활한 초지에는 한국인이라고는 총책임자인 김명수(36) 과장과 부인, 두 아들 뿐이다. 『주변에 인가는 우리 가족이 사는 사택과 목부들을 위한 5채의 집이 전부입니다. 처음 이 곳에 와 밤에 문밖에 나가보니 보이는 것은 하늘의 별뿐이었어요. 아내는 「이런 데서 어떻게 사느냐」며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지요. 정말 막막하더군요』
그러나 김과장은 『2, 3년 임기로 이곳에 부임했지만 쇠고기 생산과 수출을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 필요하다면 10년이라도 있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서울대 농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축산전문가는 아니었다. 88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6년여 동안은 철강수출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다가 94년 사내 해외농장 운영요원 선발시험에 지원, 20대 1의 경쟁을 뚫고 다른 두사람과 함께 합격했다. 이어 지난해 6월까지 15개월간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축산 연수를 받으면서 소의 사육 및 도축, 고기 가공기술을 실습했고 소품질 관리사, 양품질 관리사, 육류 평가사 등 5개의 현지 자격증도 땄다.
『무역을 하겠다고 입사해 놓고 소와 함께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생소하고 일도 아직 서툰 점이 많지만 시간이 갈수록 기꺼이 장래를 걸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의 처녀사업이라는 부담에 비례해 성취감과 보람이 크거든요』
김과장은 자질구레한 작업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 호주의 목장주들과는 달리 모든 일에 관여하고 되도록 현지인과 자주 접촉하려고 애쓴다. 목장의 회계관리는 물론 5명의 현지인 목부들의 몫인 소몰이와 방역, 소의 귀에 인식표를 다는 일 등에도 직접 나선다. 특히 소몰이는 소의 뒷발질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위험이 뒤따르지만 그는 다양한 손짓과 음성으로 소떼를 원하는 장소로 몰아가는 능숙한 솜씨를 취재팀에게 보여 주었다. 이런 노력덕분에 목부들은 『김과장의 숙련도와 영어실력은 그가 불과 5개월전에 부임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최근들어 목장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거네다 소경매장에도 매니저인 저스틴 오너(45)씨와 함께 나가 경매를 통한 소 구입방식을 배우고 있다. 현지 경매사의 몸짓과 외침은 일반인들로서는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지만 김과장은 이제 경매사들과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그는 영락없는 호주 목부가 돼 가고 있었다.<와라목장(호주 윌로트리)="유성식" 기자>와라목장(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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