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부문에서 당선한 김혜진(38)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이다. 30대 여성이 주도하는 요즘 우리 문학계에 또 하나의 새별이 떠오른 셈이다.『문학에 대한 갈망과 그것을 이룰 수 없는 허탈감 사이에서 책만 읽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못하면 한이 쌓이나 봅니다. 결국 다시 시작했지요』
강원 정선이 고향인 김씨는 문학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교를 마치고 무작정 상경했다. 소규모 사업체를 돌며 직장생활을 했고, 뒤늦게 서울예전 문예창작과를 다녔다. 김씨의 남편은 가요 「참새와 허수아비」로 잘 알려진 작곡가 박철씨. 창조에 꿈을 둔 두사람이 방한칸을 얻어 결혼했지만, 기타 소리 속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혼 후 몇년은 하루에 7∼8번씩 밥상을 차리는 등 집안일에 파묻혀 살았다. 올해 1월부터 작가 윤후명씨의 문학강좌에 다니면서 다시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어머니의 산」은 파행적 가정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한 여인의 힘든 역정을 종교적 색채를 입혀 그려내고 있다.<권오현 기자>권오현>
◎당선소감/“아름다운 발자국 남기고 싶어”
물이 막 빠져나간 하얗고 촉촉한 모래톱에 발자국이 찍히고 있었다. 나는 오간데 없는데 발자국이 걸어가고 있었다.
뒤뚱거려 한쪽이 더 깊이 패인 자국, 비틀거리며 찍어놓은 찌그러진 자국. 나는 없는데 자그만 발자국만 나처럼 자국을 남기며 걸어가고 있었다.
우체국에서 응모작품을 보내고 돌아와 멍하니 앉아있다 본 환상이었다.
결국 이런게 아닐까. 내가 나라고 우겨왔던 것들은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던게 아닐까. 결국은 모래사장에 찍힌 발자국이 내 참모습이 아닐까.
바람이 불거나, 때가 되면 물결에 말끔히 사라져 버리는 것. 나라는 것은 발자국을 바라보는 시선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때로는 뒤뚱거리는 발자국을 남기고 싶다.
기쁨보다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제 마음의 큰 스승이신 월산 김승복 선생님 내외분과 소설의 길을 열어주신 최인훈, 윤후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 친구들에게 이상을 드립니다. 미숙한 작품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심사평/능숙한 우리말·강인한 작가정신 인상적
이번 본선작품들은 자잘한 인정의 기미를 천착한 소재들이 대체로 많았으나 무얼 얘기하려는지가 분명치 않고 상상력이 빈곤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약점으로 지적됐다.
테크놀로지를 앞세우는 딴 매체들에 문학이 주눅들거나, 90년대초 이념 부재의 후유증이 여지껏 가시지 않았나 싶어 저으기 걱정스럽다.
「악령의 밤」은 극적인 구성이 돋보였으나 그것이 영화의 표피적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인동」은 풍자가 격을 갖추지 못했다.
「궁전에서 보낸 날들」은 짜임새는 아담해도 우리 근대문학의 그 흔한 주제에서 한치도 벗어남이 없다. 마지막까지 논란이 됐던 「알로에 여자의 여름」은 묘사도, 마무리도 차분했으나 가게나 약방을 설정하고 그 폐쇄공간 안팎을 살핀다는 식의 근작 여성소설들의 상투적인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어머니의 산」은 그런 와중에서도 소재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결과를 보고야 말겠다는 정신의 강인함이 돋보인다.
물론 흔한 소재와 전통적인 주제에다 여성을 주체로서 슬쩍 대입시켜 페미니즘 운운하는 유행어까지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의 능숙한 구사와 앞서 지적한 끈질긴 정신력이 어울려 시류적인 그런 한계를 훨씬 벗어나고 있어, 문학의 길이나 방법을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심사위원=이제하 이문구 김승옥>심사위원=이제하>
□약력
▲59년 강원 정선 출생
▲정선여고 졸업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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