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새 3∼4개국 넘나들기도96년 한해 동안 해외 체류 257일. 제야의 종소리를 언제나 해외에서 듣는 사람. 일년의 3분의 2가 넘는 날을 외국에서, 그것도 5대양 6대주를 숨쉴 틈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해외진출에 어느 기업인보다 앞서가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캐리커처이다. 「세계경영」의 슬로건을 내건지 4년. 김회장은 지난해에만 폴란드 프랑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인도 등 35개 나라로 출장을 다녔다. 가는 곳에서 그가 만난 세계의 정상들만 따져도 콜 독일총리, 시라크 프랑스대통령, 메이저 영국총리, 장쩌민(강택민) 중국국가주석, 하산 모로코국왕, 카를로스 스페인국왕, 무오이 베트남 공산당서기장, 삼페르 콜롬비아대통령, 크바니예프스키 폴란드대통령, 카리모프 우즈베키스탄대통령 등, 두 손으로 몇번을 꼽아도 모자란다.
(주)대우 출범 등 대우그룹의 제2창업을 선언하고 분주히 해외를 누볐던 82년의 270일 출장기록에 이어 그는 지난해 두번째로 오랜 시간 해외에 머무른 「은메달 기록」을 세웠다. 96년은 그가 회갑을 맞은 해였다. 보통 사람같으면 하던 일에서 물러나 이제 새 인생을 설계할 나이이다.
국내에서 그의 하루는 아침 5∼6시 일어나 언제나 밤 12시를 넘겨서야 잠자리에 드는 일과의 연속이다. 7시에 주로 힐튼호텔의 집무실로 출근하여 30분마다 사람을 바꿔 만나면서 숨 돌릴 여유없이 일을 처리한다. 여유는 커녕 사람을 만나면서 2∼3분 짬을 내어 서류를 결제하는 경우가 예사이다.
해외출장을 가면 더 바빠진다. 일주일 사이에 많게는 서너개 나라를 넘나들기도 하고 유럽에서 저녁비행기로 하룻밤 사이에 아프리카로 옮겨가기도 한다. 그는 가능하면 저녁비행기를 타기 좋아한다. 비행기에서 잠을 청하고 다음날 낮 하루종일 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를 무대로 얼마나 정력적으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는 지는 바늘구멍 하나 들어갈 틈이 없는 그의 스케줄 관리표에 잘 나타나 있다. 이중 96년의 어느 일주일 일정을 돌이켜 본다. 11월말 어느날 서울을 떠난 김회장은 오스트리아를 거쳐 다음날 낮 12시쯤 폴란드 바르샤바공항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동유럽에서 그의 일주일은 회의, 현지 기업인·정부관계자와의 만남, 현지 대우직원 격려행사의 연속이었다.
도착 즉시 폴란드 국영자동차회사인 FSO 운영팀과 회의, 현지 대우자동차 판매상들과 면담을 갖고 하오엔 바르샤바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루블린 상용차 생산공장으로 출발했다. 현지공장을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한 뒤 정해진 숙소에 묵을 때까지 그는 한순간도 쉬지 않는다. 기차로 이동하면서도 늘 곁에 있는 임원으로부터 방문할 공장의 현황에 대해 보고 받고 궁금한 것들을 묻는다.
사흘째에는 하루동안 트럭생산공장과 헬기공장 등 3군데 공장을 둘러보며 사업성을 타진하는 상담을 가졌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동수단은 헬기까지 동원됐다. 외부사람을 만나지 않는 시간은 식사시간을 빼고 현지 사업 팀과 연속회의를 갖고 저녁에는 폴란드 주재 대우직원·가족들을 위한 격려모임을 연다. 닷새째 헝가리에 도착해 사흘 뒤 영국으로 떠날 때까지 김회장은 헝가리 정계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지난 연말에도 그는 12월19일의 회갑을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보내고 사흘 뒤 훌쩍 유럽으로 떠났다. 20일 일정으로 폴란드 대우현지공장을 점검하고 프랑스에서 그룹의 주요 현안이 된 톰슨 멀티미디어 인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일정 동안에도 빼놓지 않고 저녁시간에는 대우직원을 격려하는 행사를 열었다. 95년 12월31일을 유럽에서 일과 함께 보낸 것처럼, 94년의 마지막을 아프리카 수단에서 대우 타이어공장 직원들과 함께 지낸 것처럼, 외국에서 한해를 보내고 맞는 것이 이제 그에게는 일상이 되어 있다.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김회장에게서 세계 구석구석에 뿌리내리는 한국기업인의 자신감과 열정이 뜨겁게 전해왔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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