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년 연말이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그렇지 않아도 썰렁하던 연말에 신한국당이 노동관계법과 안기부법을 날치기 통과시킨데 반발해 노동계가 파업에 돌입, 더욱 어수선하다.지난 한해동안 일어났던 사건중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단연 국민적인 관심사였다. 세계의 언론도 「세기의 재판」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구호도 국민적인 호응을 얻었다. 군사정권의 잔재가 씻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당이 주도한 안기부법과 노동관계법의 날치기통과로 「역사 바로 세우기」란 구호가 퇴색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정권때보다 후퇴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야당과 사회단체에서는 「문민 쿠데타」란 표현까지 동원했다.
지난 한해동안 우리사회를 풍미한 바람은 역시 명예퇴직이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불기 시작한 명예퇴직은 「조기」(조기퇴직) 와 「명태」(명예퇴직)란 유행어를 낳았고 각종 연말모임의 화두가 됐다. 어물전에 조기와 명태가 쏟아져나와 값이 떨어졌다는 우스개마저 들렸다. 개정노동법에 포함된 「정리해고제」조항 때문에 「황태」(황당한 퇴직)값도 떨어질 것이라는 자조섞인 유행어가 새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지난 한해는 고위관리들의 잇단 뇌물사건, 북한 잠수함 침투사건 등 수많은 사건 사고들로 얼룩졌다. 우리언론은 이 사건 사고들을 얼마나 정확하고 공정하게 보도했는가. 외압 때문에 왜곡한 적은 없는가, 역사의식이 부족해 축소하거나 과장한 적은 없는가.
독일 최고의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문예담당편집국장 쉬어마허는 지난해말 송년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한해의 마지막날 독자들에게 매일 뉴스를 전하는 우리도 이 고요한 시간에 침묵한다. 우리가 올해 칭찬하고 비난했던, 간과하거나 오해했던 그 모든 것에 대한 판단은 이제 신문이 아니라 역사의 몫이다』 한해를 보내며 다시한번 음미해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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