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태아에 대한 성차별이 처벌을 받은 첫해이자 여성단체가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법적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운동이 국제적인 인정을 받은 해이다.태아 성감별을 해준 산부인과 의사 3명과 조산사 등 4명이 10월 1일 구속되어 인위적인 성비파괴와 태아 때부터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풍조에 경종을 울렸다. 또 3월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 본회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국제법 상 불법 행위로 규정한 쿠와라스와미 유엔특별보고관의 보고서가 채택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여성발전기본법이 7월부터 시행됨에 따라 여성발전기금 100억원이 조성되었고 성차별개선위원회가 출범했다. 또 세계화추진 10대 과제의 하나로 여성참여 확대를 위한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가 올해부터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행정·외무고시(5급), 행정·공안·외무행정직(7급) 공채선발시험에서 10%이내를 여성으로 선발하였다. 이 비율은 97년 13%, 98년 15%, 99년 18%, 2000년 20%로 계속 확대된다. 또 공군사관학교가 97년 입학생을 대상으로 처음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또 그동안 여성 아동 노인 등 약자에게 자행되어온 가정폭력을 사회적으로 제재하기 위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운동이 시작되었다.
◎신낙균 국회 여성특위 위원장/성폭력법 개정안 등 여야 합의 큰 보람
『여성계의 숙원이었던 가정폭력방지법과 성폭력특별법개정안에 여야를 막론하고 합의했다는 것이 이번 여성 특위활동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신낙균(국민회의 부총재·55) 국회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이를 통해 여성특위가 명실상부하게 여성문제 현안 해결의 창구로 자리매김했다』고 지난 6개월간의 특위활동을 자평했다.
국회 여성특위는 14대 때인 94년 6월28일 설치된 상설특별위원회. 15대 국회에서는 여성의원 9명을 비롯한 20명의 선량들이 활동하고 있다. 신위원장은 『의원들이 상임위원회 일정이 바쁜 와중에도 여성특위 활동에 열성적』이라며 『특히 여성단체나 전문가와의 간담회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점도 성과』라고 말했다.
여성특위는 299명 의원들의 여성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여성 관련 현안 및 정책」자료집도 1, 2호까지 발간했다.
신위원장은 『여성특위는 국정감사권 입법발의권 등 실질 권한이 없고 해당 상임위에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칠 수 밖에 없어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15대 국회에는 여성의원이 전체의 3%로 9대 국회(11명)이후 가장 많은 수이다. 신위원장은 『여성의원들은 이제 뛰어난 의정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여성 국회의원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은 여성들의 권익을 찾는 데 충분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신위원장은 『내년 여성특위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개정안, 아동보육시설 내실화 등을 이루기 위해 다시 뛰겠다』고 밝혔다.
◎이인호 국내 첫 여성대사/상호 문화이해·교류 외교관활동에 필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사로 2월에 부임한 이인호(60) 주 핀란드 대사는 비록 정책과정에 여성참여를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지로 대사직에 올랐지만 역할을 잘 수행하여 여성외교관의 입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캐나다에서 열린 지뢰방지국제회의에는 한국대표로 참가, 「전쟁방지 차원에서 한국은 대인지뢰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전달해서 외교가의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는 핀란드 대사직 수행에 특별한 어려움은 없으나 무역역조가 심각하고 한국문화에 대해 거의 모르고 있어 사명감을 느낀다. 이 때문에 9월에 핀란드 국립박물관에서 우리 전통의상전시회를 가졌고 내년 2월부터 세 달동안 국립미술관에서 전통한국미술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유럽의 다른나라처럼 핀란드도 문화적 전통이 깊기 때문에 외교관의 역할도 국제정세보다는 그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교류를 넓혀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이대사는 강조한다.
핀란드는 1906년에 이미 국회의원 199명 가운데 16명이 여성이었을 만큼 여성참정의 역사가 깊고 지금도 국회의장과 외무장관을 비롯해서 각료 8명이 여성이어서 최초의 여성대사라는 설명에 오히려 놀란다고 들려준다.
『정치가 부패하지 않고 사회공직은 봉사하는 자리라는 인식이 여성의 공직기여도를 높이는 주요인』이라며 이대사는 우리나라도 이 점에서 더욱 선진화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혜수 정신대대책협 국제위원장/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적 공인받아
한국 여성의 전화 신혜수(47·한일신학대학 사회복지학부 교수) 회장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국제협력위원장을 맡은 지 4년만인 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제적인 인권문제로 공인받는 데 성공했다.
4년동안 유엔본부가 있는 제네바에만 9번을 간 것을 비롯, 전세계를 20차례나 다니며 정신대의 피해와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를 고발해온 결과 UN인권위원회의 여성폭력조사특별보고관이 한국을 방문, 실태를 조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전시 중 조직적 강간 및 노예제」가 3월 유엔의 정식보고서로 채택되었다. 이 자료는 정신대 피해상황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는 첫번째 공식 보고서가 되었다. 신회장은 이 때문에 9월 미국의 여성인권단체 「국제여성과 법개발」이 인권향상에 크게 이바지한 여성지도자에게 주는 제1회 「여성인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씨는 『이 상은 내게 준 것이 아니라 정신대 문제를 고발해온 정대협과 고통을 받아온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주는 상』이라고 말한다.
신씨는 『정대협은 앞으로 일본이 정식으로 위안부 배상을 위한 법을 제정하도록 전국민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위안부 할머니의 생계를 돕기 위한 국민모금과 수요일 거리시위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힌다.
◎공군사관학교 첫 여성생도 임수영/모집공고 본 순간 ‘저게 바로 내 인생’/여성 ‘탑건’ 1호 포부
『금녀의 벽을 허문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절감합니다. 하늘을 지키는 늠름한 보라매가 돼서 국군내 여성의 역할이 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군사관학교 첫 여성생도로 선발된 임수영(18·인천 명신여고3)양은 96년을 「지상에서 맞은 최고의 해」라고 말한다. 공사설립 49년만에 처음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97년도 신입생도로 뽑혔으며 20명 여성생도 중 수석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간직해온 파일럿의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임양이 공사 첫 여성생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접한 것은 지난 5월. 어린시절 친척집에 가느라 비행기를 탔다가 「몸이 공중에 떠있다」는 짜릿한 자각과 함께 항공에의 동경을 품어온 임양은 공고를 보는 순간 「저게 바로 내 인생」이라고 결심했다. 1차 내신, 2차 체력 및 인성검사, 3차 수능시험을 다 치르는 동안 평생 한 것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한 것같았다. 결과는 총점 835.4로 여자수석. 딸의 진로결정을 100% 신뢰하고 밀어준 아버지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 승부욕을 느낀다』는 임양은 전투기조종사가 꿈이다. 현재 여군 중에는 수송기나 헬리콥터 조종사는 있지만 전투기조종사는 전무한 만큼 여성 「탑 건」 1호를 기록하겠다는 포부다. 장래 「별」도 달고 싶고 「여자는 신체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전투보다는 행정지원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여성에 대한 은근한 편견을 없애고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도 한몫할 각오이다.
PC통신에 날 새는 줄 모르고 멋내기에 관심이 많으며 풍물반에서 북채를 잡으면 신명이 절로 나는 전형적인 신세대이지만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를 때까지는 재미를 찾기보다 절제와 인내를 배우겠다』는 당찬 면모를 보인다.
◎가정폭력 사위살해 이상희씨/가정폭력 방지법 제정운동 촉발시킨 눈물의 모정
4월, 딸을 성폭행한 뒤 강제동거하면서 상습폭행해온 「사위」를 살해한 이상희(72)씨는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정폭력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를 했다.
사건 직후 딸 정미숙(41)씨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경찰에 「자수」했고 보름뒤 이를 알게 된 어머니가 경찰에 탄원서를 써가며 사건경위를 자백하여 구속되었다. 이같은 눈물의 모정에 경기지역 YWCA 가정법률상담소 여성의 전화 등 여성단체들은 이씨 석방운동을 펼쳤다. 이씨는 7월5일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남편」과 「사위」 때문에 지옥같은 삶 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모녀는 이 사건으로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 나는 혼자가 아니다』하는 귀한 경험을 얻었다. 정씨는 직장도 생겼다. 찾아오거나 전화로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 모두가 이씨에게는 사건 자체를 상기시키는 것이어서 집도 옮겼다. 정씨는 현재 직장이 있는 서울에 방을 얻어서 주말에만 어머니를 만난다. 이씨는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중학 3학년인 정씨의 딸이 『친구들이 놀려서 괴롭다』고 휴학중이어서 상처는 아물지 않고 있다. 정씨는 『직장에 매여 바쁘지만 나처럼 고통받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다』고 말한다.<서화숙·김동선·이성희·노향란 기자>서화숙·김동선·이성희·노향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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