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기위해아이를 가지기 훨씬 전부터 나는 친구같은 아버지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항상 거리감을 느꼈던 나의 아버지가 미친 영향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내가 설정한 부자유친의 방향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엄숙함에 숨막혀 하는 체질인 나는 가볍고 유쾌하게 사는 법을 온 몸으로 전수시키고자 애썼다. 나는 내가 놓쳐버린 동화의 세상을 아이와 함께 나눠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
교육학을 전공한 아내는 스킨십의 중요성을 늘 강요했다. 나는 잠자거나 깨어있거나 아이의 볼에 입맞추기를 즐겨했으며 그것은 아이가 초등학교 삼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이가 그린 아빠 그림속에서 나는 초콜릿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달콤한 것을 좋아하고 움직이기보다는 앉거나 누워서 시력만 조절하는 내모습이 아이에겐 대표심상이었던 셈이다.
아내는 함께 농구를 하거나 수영을 하라고 권하지만 운동과는 애당초 담을 쌓은 내겐 쉽지 않은 요구이다. 아버지인 내가 할 일은 아이가 담장속에 갇혀 그 안이 전부인 줄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나는 과감하게 휴직원을 내고 가족과 함꼐 일년간 미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와 나는 친구처럼 더 가까와졌으며 아이는 세상엔 참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음을 실감으로 확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귀국한 나는 매일같이 국제전화로 언어의 스킨십을 주고받는다. 아침반찬은 뭐였고 학교에선 무엇을 배웠고 방과 후엔 누구와 뭘 했는지 시시콜콜하게 아이는 털어놓는다. 이 추억이 그가 자라면서 따뜻한 힘의 원천이 될 것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나의 말하는 방식에 대해 누군가가 혹시 아버지의 권위를 포기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참이다. 『권위는 사랑이 부족하거나 결여되어 있을 때 필요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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