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망국병’ 비판 불구 가장 보편화한 ‘국민레저’/가족·친척 대화통로 역할도/그러나 ‘심성파괴 도박’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스톱은 도박인가, 레저인가.
고스톱 망국론이 줄기차게 들먹여지던 때가 있었다. 한 사회단체가 공개 장소에서 화투 5,000여 벌을 불태웠고, 군에서는 고스톱 추방운동도 벌어졌다. 한탕주의를 조장하고, 생산력을 갉아 먹는 「고질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연히 고스톱을 즐기는 이들에 대한 사회의 눈길도 곱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고스톱은 가장 보편화한 「국민 레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70% 이상이 고스톱을 칠 줄 안다. 「4천만의 레저」라는 말이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이나 연휴 때면 온 나라에 고스톱판이 펼쳐진다. 이쯤되면 「레저」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문화」라고 부를 만하다.
고스톱이 빠르고 깊게 국민 속으로 파고 든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다른 도박성 놀이에 비해 서민적인 속성 때문이다. 고스톱 규칙은 다른 도박놀이보다 쉽다. 포커나 마작 등에 비해 오가는 액수도 적은 편이다. 물론 큰 판으로 확대될 수도 있지만 가족모임에서는 1점당 100원짜리 판이 많다. 그러면서도 변수가 있어 적당한 스릴과 긴장을 준다.
서민성 외에 고스톱이 강한 전파력과 번식력을 갖게된 것은 풍자성도 한 몫 거들었다. 고스톱판은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가장 빨리 담는다. 전두환 고스톱, 비자금 고스톱, 삼풍 고스톱 등 특별한 이름의 고스톱들은 일그러진 정치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고스톱이 「대화를 없앤다」는 주장에도 반론이 많다. 집안일 끝낸 주부들의 수다모임은 주로 고스톱판이 만든다. 고스톱판에서 그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경험을 주고 받고, 은밀한 부부문제까지 의논한다. 뜸하게 만나는 친척들의 모임에서도 고스톱판은 대화의 촉매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와서는 고스톱 효도론도 나왔다. 나이 든 부모를 즐겁게 해주려 고스톱을 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스톱이 최고의 효도라고도 한다. 고스톱을 치면 노인치매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출근 전과 퇴근 후에 노부모와 꼭 고스톱판을 벌이는 아들이 있는가 하면, 명절 때는 오랜만에 뵌 부모와 밤새 고스톱을 치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해도 『도박은 인간의 심성을 파괴한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액수가 작아도 고스톱은 본질적으로 도박이기 때문이다. 도박하는 인간에게는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려는」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가족 또는 친척끼리, 친구나 회사 동료끼리 벌이는 심심풀이 고스톱판이 종종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고스톱을 레저라고 봐준다면 이 순간 레저의 의미는 사라진다.<최성욱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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