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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앤디 워홀(작품속의 여인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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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앤디 워홀(작품속의 여인들:9)

입력
1996.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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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게 유럽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고전주의 미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인상파와 초현실주의, 입체파 등 근대미술 운동이나 이론에서도 모두 유럽이 주인공이었다. 20세기 중반 다행히 프랭크 스텔라, 잭슨 폴록 같은 이들이 「추상 표현주의」라는 독특한 화풍으로 미국 미술계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그들로 어느 정도 체면을 유지하고 있던 미국의 60년대. 이때 등장한 앤디 워홀(1928∼1987)은 미국 미술계에서는 일종의 문제아였다.

그가 들고 나온 「팝 아트」라는 것은 도무지 예술가의 독창성도, 고상한 고민도 들어있지 않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비판을 먹고 자라나 대중 스타가 됐다.

사전적 의미로 「팝 아트」는 대중적인 이미지를 순수미술의 문맥 안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을 이르는 말. 이에 어울리게 워홀은 리즈 테일러, 재클린 케네디 같은 시대의 미인, 코카콜라 병, 브릴로 상자, 캠벨 수프 깡통 같은 상품의 모습을 그리거나 아예 그것 자체를 쌓아 전시를 기획했다.

62년 작 「마릴린」은 당대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의 사진을 실크 스크린 기법을 이용해 캔버스에 직접 전사해 만든 것으로 이전 화가들의 「장인적」 요소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복제된」 마릴린 먼로는 대중이 만들어낸 스타란 결국 환영적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일깨운다.

워홀은 같은 방법으로 만든 먼로 사진을 가로 4줄, 세로 4줄씩 16장을 이어 붙여 패턴과 같은 형태의 그림을 만들었다. 이 작품의 이름 역시 「마릴린 먼로」. 이러한 노골적 반복은 대중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오히려 대중 위에 군림하는 스타의 실체를 보여준다. 기계적으로 반복된 먼로의 이미지는 기계로 찍어낸 캠벨 수프 깡통과 같은 이미지다.

그러나 이런 평은 미술 평론가들의 이야기일뿐 실제 워홀은 이와 같은 메시지를 직접 설명하지도 않았다. 다만 약상자를 척척 쌓아놓은 작품 「브릴로」에 대해 『나는 미국을 숭배한다…나의 이미지는 차가운 비인간적인 상품과 오늘날 미국이 기초하고 있는 물질적 대상들에 대한 성명서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작품은 「문명비판적」이라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 그는 진지한 예술가이기 보다는 시대의 어릿광대 같은 모습을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더이상 미술이 독창적인 예술활동이 아님을 말했다.

그의 주장은 한마디로 더 이상 예술은 영원하지도 고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대량 생산, 대량 복제 시대의 미술의 위상을 코믹한 냉소로 표현했는데 대중들은 그 냉소마저도 유머의 소재로 치환해 버렸다. 미국적이다.

캔버스에 실크 스크린. 세로 51㎝, 가로 40.5㎝. 레오 카스텔리 부부 소장.<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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