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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경제부흥의 그림자/김인규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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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경제부흥의 그림자/김인규 국제부장(데스크 진단)

입력
1996.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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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RTA)」게릴라들의 리마주재 일본대사관저 인질납치극은 그간 간과돼왔던 페루의 몇가지 병폐를 대외에 노출시키는 의외의 결과를 낳고 있다. 화려한 포장지 속에 들어있던 경제부흥이라는 상품은 기대만큼 양질이 아니며 서구식 민주주의는 문민독재로 변질되고 있다는 실상이 인질사태의 부산물로 드러난 것이다.80년대 말까지 대표적인 경제실패국으로 낙인찍혔던 페루는 90년 들면서 그 이미지를 일신하기 시작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란 일본계 사업가가 혜성처럼 등장,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계기가 됐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취임후 살인적인 고인플레를 잡아갔고 지속적인 경제성장까지 이룩했다. 페루 국민들은 물론 세계 유수의 매스컴들까지 그를 파산위기의 국가를 구한 「유능한 대통령」이라고 칭찬했다. 이같은 업적과 평가에 힘입어 94년에는 개헌을 통한 재집권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때를 전후해 그는 아르헨티나 경제를 회생시켜 이미 중남미 최고스타가 돼있던 카를로스 메넴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오히려 능가하는 점수를 받았다. 메넴이 도밍고 카바요라는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유능한 경제장관의 보좌를 받고 페루보다 나은 경제 여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그렇지 못한 후지모리가 우위로 평가된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후지모리 대통령은 또 페루가 치안부재의 나라라는 오명도 씻었다. 치안확보에 암적 존재였던 공산게릴라 「빛나는 길(센데로 루미노소)」의 지도자 아비마엘 구스만을 체포하는 등 이 조직을 거의 와해단계로까지 몰고 갔다. 강·절도 등의 일반범죄도 발생건수를 대폭 줄였다.

그러나 후지모리 대통령은 이번 인질사태로 그간 외부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치적상의 일부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바람에 이미지 손상은 물론 향후 통치권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경제 부흥은 국영기업의 민영화로 가능했으며 민영화 대상 기업이 이제 거의 고갈돼 더 이상 경제성장은 어려우리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영화는 또 국영기업의 독점권이 국가에서 대기업 등으로 넘어간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페루의 경제성장이 적절한 정책에 의해 이루어졌다기 보다 국가재산을 팔아 나라살림을 그럭저럭 꾸려온 형태에 불과하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중남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지만 후지모리 집권 이후의 페루 역시 여론이 제도권정당을 통해 정책으로 반영되지 않는 병폐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외신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MRTA가 제도권 정당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고 전망한 것은 이같은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상당수 페루 국민들은 올 10월 후지모리에게 3선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된 사실을 문민독재의 본격 시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민독재의 길을 열어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MRTA의 활동 재개에 촉매제 역할을 했다 할 수 있다.

이번 인질사태는 중남미가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로, 파산경제에서 경제성장으로 옮아가고 있지만 아직은 좌익게릴라들이 발호할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음을 페루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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