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은퇴,서지원·김광석의 자살/룰라·김민종 표절 등 잇단 악재속/사전심의 철폐·립싱크 자제 등 노력도어두운 한해였다.
죽음, 표절, 은퇴 등의 악재가 잇달은 반면 한 해를 상징할만한 새로운 흐름이나 참신한 신인, 뚜렷한 히트곡은 쉽게 꼽아지지 않는다. 립 싱크, 10대 가수 등 92년 댄스 열풍이 시작된 이래 누적돼온 문제들에 대한 사회의 비판 여론도 어느 해보다 매서웠다.
가요계는 여전히 댄스 음악이 주도했다. 댄스로 스타의 자리에 오른 기성 가수들이 계속 강세를 보였다. 김건모는 「스피드」가 수록된 5집으로 올해 최고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댄스 그룹 3인방인 DJ DOC, R.ef, 터보도 전작 못지않은 성공을 거두었다. 1월 「천상유애」의 표절로 리더 이상민의 자살소동과 활동중단을 선언했던 룰라도 이현도의 「3! 4!」로 재기에 성공했다.
유일하게 댄스 음악에 대적할만한 발라드에서는 황제 신승훈이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으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그 뒤를 솔리드와 조관우, 녹색지대, 김정민 등이 이었다. 감각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전람회와 클래식도 젊은 층들로부터 호응이 높았다. 발라드는 아니지만 개성있는 음악을 선보인 패닉과 삐삐밴드의 활약도 주목할만했다.
악재 중의 악재는 음악인들의 잇단 사망. 바로전 연말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 살해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새해 첫날 서지원이 히트에 대한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어 5일 뒤에는 김광석이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두사람의 죽음은 한동안 많은 사람들을 우울하게 했다. 6월30일 「신라의 달밤」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 무수한 노래를 만든 작곡가 박시춘의 타계도 올 가요계의 커다란 손실이다.
표절도 일년 내내 가요계를 괴롭혔다. 룰라에 이어 10월에는 김민종이 자신의 노래 「귀천도애」가 일본 노래의 표절임을 시인, 가수은퇴를 발표했다. 이밖에도 많은 곡이 표절시비에 휘말렸으나 그 때마다 별다른 문제없이 지나가 가요계의 「표절불감증」을 또한번 실감케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갑작스런 은퇴 역시 그들이 90년대 청소년 문화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볼 때 큰 사건이었다.
그러나 잇단 악재 속에서도 가요발전을 위한 노력들이 있었다. 6월7일 가수 정태춘 등의 끈질긴 투쟁으로 사전 심의 철폐를 골자로 한 새 영상음반법이 발효되었다. 이로써 자유로운 창작의 발목을 잡던 외압은 사라졌다. 이는 몇달 뒤 영화 사전심의의 위헌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 수동적으로 노래를 받아들이기만 했던 대중들이 PC통신을 통해 표절곡을 적발했고 방송국은 립싱크를 자제하기 시작했다. 97년에 대한 기대를 가능하게 하는 작지만 중요한 징후들이다.<김지영 기자>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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