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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흐름으로 본 올해의 문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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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흐름으로 본 올해의 문화계

입력
1996.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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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 상품」이라는 명제는 이제 상식이 됐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는 문화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대시키고, 사람과 자본의 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우리 시대 문화의 극단적 상업화라는 또다른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각 분야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흐름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계의 올 한해를 정리한다.◎영화/‘사전심의는 위헌’ 판정과 파장

한국영화는 지난 10월4일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흥행 및 채취에 관한 법률」로 시작돼 74년동안 계속된 영화 사전검열제 폐지. 헌법재판소가 공륜의 「가위」를 부러뜨린 것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주려는 시대분위기와 80년대 이후부터 영화통제를 없애려는 일부 영화인들의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일등공신은 92년 전교조문제를 다룬 16㎜영화 「닫힌 교문을 열며」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해 공륜으로부터 형사고발 당했던 강헌(34)씨. 위헌제청을 낸 지 3년만에 거둔 결실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런 해방,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영화인들은 당황했고 갈등했다. 등급제, 성인영화전용관 설치 등의 문제를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렸고, 정부와 여당이 마련한 새 영화법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그 와중에 터진 영화인들의 탈세로 인한 구속사건은 한국영화계의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를 주었다.<이대현 기자>

◎문학/장정일 소설과 음란·외설시비

작가 장정일의 장편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가 음란·외설 시비를 부르고 결국 책을 낸 출판사 관계자가 11월 구속됐다. 「문학의 해」가 저물어 가던 때, 우리 문단과 사회 모두를 당혹케 한 사건이었다. 이보다 앞서 아나이스 닌의 「에로티카」 시리즈와 아르헨티나 작가 알리시아 스테임베르그의 「아마티스타」를 번역해 출간한 출판사도 비슷한 이유로 등록 취소를 당했다. 문학작품이 사법적 잣대로 재단되고, 그 작품성에 대한 치열한 논의의 장이 닫혀버리고 마는 현실은 문단 안팎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갈수록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페미니즘 경향, 그와 관련해 「성감대문학」이란 용어까지 등장케 한 일련의 신인여성작가들의 작품활동은 97년까지 이어지는 문단의 논점이 될 것이다.<하종오 기자>

◎방송/국감서도 거론된 ‘애인’ 열풍

MBC 미니시리즈 「애인」(극본 최연지, 연출 이창순)은 방송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분야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왔다. 기혼남녀의 불륜을 미화했다는 비난과 기혼남녀의 사랑을 새로운 시각으로 표현, 논의의 장으로 끌어냈다는 찬사가 엇갈렸다. 10월17일 국회 방송위 국감에서도 거론될 정도.

절제된 대사, 드러내지 않는 내면연기, 탄탄한 시나리오와 감각적이면서도 깔끔한 연출 등이 성공의 비결로 꼽힌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바람기」를 정확하게 집어낸 것이 내면적인 성공요소로 보인다. 「불륜」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시청률 부진으로 침체에 빠진 MBC가 올해 유일하게 「건진」 드라마였다. 주연을 맡은 황신혜는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재기에 성공했고, 배경음악으로 쓰인 캐리 앤 론의 「I.O.U」도 때아닌 인기를 얻었다.<박천호 기자>

◎가요/‘서태지와 아이들’ 은퇴선언

『힘겨운 창조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지난 1월31일 10대들의 우상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를 선언했다. 92년 첫 앨범 「난 알아요」로 가요계에 랩 댄스 열풍을 몰고 온 이래 2집 「하여가」, 3집 「교실이데아」, 4집 「컴백홈」을 내놓고는 사라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기성세대의 매너리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가정과 학교에서 주눅든 청소년들은 그에게 열광적 지지를 보냈다. 사회학자들은 그 신드롬을 분석했다. 때문에 그들의 은퇴는 청소년들의 심리적 공황과 세대갈등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들은 지금 자신들의 고별사처럼 「가장 창조적이었던 음악인으로 아름답게」 10대들의 가슴에 남아있다. 서태지는 미국에 잠적중이며 이주노는 KBS의 「FM 인기가요」를 진행하고 양현석은 후배들을 양성중이다.<유병률 기자>

◎출판/무명 김정현 소설 ‘아버지’ 돌풍

전반적 불황의 늪에 빠진 출판계에 무명작가였던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몰고 온 돌풍이야말로 최대의 화제였다. 8월에 출간된 「아버지」는 이미 6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가며 근래 드문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가장의 가족을 위한 헌신을 그린 이 소설은 그러잖아도 부권 상실이 운위되는 시대에, 명예·조기퇴직과 감원 바람까지 타고 우리 사회 각계각층 독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아버지」가 하반기 출판시장을 강타했다면, 상반기 출판계를 주도한 것은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였다. 인문·역사 분야 기획출판 노력도 눈에 띄는 것이었다.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 이은 「… 고려왕조실록」의 성공, 계속되는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열풍이 그것이다.<하종오 기자>

◎음악/해설 곁들인 음악회 인기

해설을 곁들인 음악회가 인기 공연 장르로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선두는 단연 지휘자 금난새.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와 「오페라 교실」은 클래식 공연장의 풍경을 뒤집기 충분했다. 그가 출연하는 날,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주변은 인기 정상의 연예인을 뺨치는 모습이 연출됐다.

끝나기 부리나케 일렬로 늘어서서 싸인을 받으려는 팬들의 장사진, 기념 촬영…. 오빠 부대가 따로 없었다.

「조성진과 함께 하는 오페라 산책」, 「쉽게 듣는 현대음악제」 등 유사한 형태의 공연들이 줄을 이었다.

일반에게는 멀리만 느껴졌던 클래식 공연장이 그렇게 대중화함에 따라, 클래식 음반 업계는 대중을 겨냥한 기획 상품들을 잇달아 내게 된다. 클래식이 너무 편의적으로 짜집기 되지 않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간간이 들렸다.<장병욱 기자>

◎연극/침체딛고 뮤지컬 약진

연극계의 장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뮤지컬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다. 「팬텀 오브 오페라」 「레 미제라블」 등의 수입 대형 뮤지컬, 국내 최초의 한미 합작 뮤지컬 「42번가」와 「지하철 1호선」 「어느 곳에도 나의 발자국은 남아 있지 않다」 등의 국내 제작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공연들이 끊이지 않았다. 소극장 뮤지컬, 순수 창작 뮤지컬 등 다양성의 확대도 두드러진 현상이었다.

뮤지컬의 대약진을 두고 연극계의 활성화에 기여하리라는 긍정적인 전망과, 해외뮤지컬의 마구잡이식 수입과 대자본의 대거 유입이 한국 연극의 토대를 무너뜨리리라는 비판적 견해가 팽팽히 맞서기도 했다. 알맹이 없는 볼거리들만의 난무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방불하는 조악한 작품 수준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황동일 기자>

◎미술/불붙은 모더니즘 논쟁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전시장의 논리는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 하지만 멀티미디어를 이용한 테크노 아트와 난해한 설치들은 우리 미술의 대안이 되기에는 한국성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 「모더니즘」으로 돌아가 새로운 미술의 대안을 모색해보려는 몸짓은 전시, 세미나, 근대성 논쟁 등 다양한 형태로 발화됐다.

호암갤러리와 현대화랑 등 주요 갤러리에선 올해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이름의 모더니즘 전시를 기획했다. 김창열 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최만린 하인두 김기린 서세옥 남관 등 70년대 모더니스트들은 90년대말 우리 미술계의 새로운 대안으로 재조명됐다. 하지만 모노크롬 중심의 70년대 모더니즘이 과연 한국적 근대성의 발원지였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미술계의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상황이다.<박은주 기자>

◎무용/창작발레 ‘손수건을 준비하세요’ 장기공연 화제

무용, 특히 발레는 하루나 이틀, 길어야 일주일 공연이 보통이었다. 얇은 관객층 때문이다. 그래서 상시·장기 공연 시스템의 도입은 무용계의 오랜 숙원이 되어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3월 서울발레시어터의 창작 발레 「손수건을 준비하세요」가 한 달 동안의 장기공연을 시도한 것은 일대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3월16일부터 4월14일까지 대학로 서울 두레극장에서 공연됐던 「손수건을 준비하세요」는 발레 공연으로서는 드물게 회당 좌석 점유율이 80%이상을 기록하는 등 관객동원에도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관객들에게 널리 알려진 기성 레퍼토리가 아닌 창작 발레를 통해 거둔 것이기에 더욱 돋보였다.<황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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