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통로 언어 영어에만 치중 곤란/다양한 문화 담긴 제2외국어 대접을고등학교나 대학교의 교과과정에서 제2외국어라고 하는 것은, 쉽게 말하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을 말한다. 그에 반하여 영어는 부동의 제1외국어이다. 그러니까 영어 이외의 외국어를 전부 몰아서 제2외국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영어는 당연히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과목으로 되어 있지만, 제2외국어는 가령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도 그 여럿 중에 하나를 택하여 가르치고 배우면 족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경우에도 다른 외국어를 전부 합한 것이 영어와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어는 적어도 공교육의 차원에서는 영어와 대등한 위치를 차지하여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국어가 아니며 엄연히 계급이 다르다.
이와 같이 그야말로 「하급의」외국어인 제2외국어가 그나마 요즈음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제2외국어는 아예 고사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우선 대학교를 보면 제2외국어는 대체로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는데, 최근에 이를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이 급격하게 적어지고 있다. 이와 맞물려 이를 강의하는 교수와 관련해서도 제2외국어 담당의 전임교수를 더이상 늘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현재의 인원에 결원이 생겨도 보충하지 않는다. 하물며 시간강사는 그 수가 현격히 감소하고 있다.
나아가 고등학교를 보면,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수학능력시험에서 제2외국어가 배제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내가 실제로 경험한 예를 들어보자. 지난해 대학입시에서 면접시험에 참여하였는데, 모 외국어고에서 지원한 학생이 독일어과를 다닌다고 하였다. 그래서 『독일어를 좋아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 학생이 답하기를 『독일어는 수능과목이 아니라서 단지 내신성적을 유지하는 범위에서 형식적으로 공부할 뿐이며 수업시간에도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일이 많고 담당선생님도 이를 묵인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름을 아는 독일의 작가는 괴테와 헤세 둘뿐이었다. 이러한 대답은 그 후에 면접한 다른 응시생의 경우에도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제2외국어 교육의 이러한 현상은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 외국어 습득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오늘날 문화상황에서 오는 것이다. 그전에도 그러하였지만 우리는 19세기 후반 이래 일차적으로 선진의 외국에서부터 배우는 것을 통하여 우리를 세우는 것을 지향으로 하여 왔다. 그것은 단순히 과학기술이나 전문지식에 한하지 아니하며 사고와 표현과 행동방식, 세계에 대한 이해와 평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관한 관념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문화이전의 소용돌이에 닥쳐서 이를 능동적으로 헤쳐 나가는 제1차적인 수단은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다. 언어의 실용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지만,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른 나라의 문화와 습속에 접하고 익히게 된다는 점이다.
전에 우리는 그러한 목적으로 한문을 배우면 족하였다. 그러면 요즈음에는 영어만 배우면 충분한 것인가. 언필칭 「세계화」라는 것은 결국 오늘날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처럼 되는 것, 즉 「미국화」인가? 내 생각에는 미국은 우리 사회형성의 모델이 되기에는 적절하지 아니한 측면이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불과 200년 전에 생명·재산·사상의 자유라는 극히 추상적인 이념을 내걸고 낯선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뭉쳐 만든 살벌한 인공국가인데, 거기다가 엄청난 자원을 갖추었다. 이러한 나라의 사회구성원리와 우리 나라처럼 오랜 세월동안 좁은 땅위에서 많은 사람이 살을 맞비비며 희소한 자원을 나누고 살아온 한겨레의 「작은」나라의 사회구성원리가 아주 같을 수는 없다. 우리의 「배움」은 영어문화에 한정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세계로 눈을 돌려 다양한 선진문화와 접하여 시야를 넓혀야 한다.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로 나아가는 쉬운 첫걸음은 제2외국어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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