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활동 촉진 취지불구 바른말 하는 반재단 교수 목자르는 칼로 악용/93년이후 61명 탈락/부당 탈락 확인돼도 구제길 없는게 더 큰 문제「교수 재임용제」는 미운 털을 솎아 내는 수단인가. 교수의 연구활동 촉진을 위해 마련됐다는 교수 재임용제가 일부 대학에서 「바른말 하는 교수」 「반재단 성향 교수」의 목을 자르는 칼로 악용되고 있다. 교육부가 규정한 「대학교원인사관리 지침」은 총·학장의 책임하에 「대학교원 재임용 심사평정표」에 나타난 평점을 기준으로 엄격히 재임용 여부를 심사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평가의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올 2월 연세대는 2명의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 시켰다. 그후 연세대는 지금까지도 재임용 심사과정의 정당성 여부를 둘러싼 진통을 겪고 있다. 탈락한 당사자의 한명인 간호대학 김혜숙 교수(모성 간호학)가 승복하지 않고 있고 동료교수들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경우 재임용 여부는 학과, 단과대학, 대학본부 인사평가위원회의 3단계에 걸친 심사로 결정하는데 김교수는 1월 19일 학과 인사위원회에서 탈락이 결정된 뒤 2월5일 본부인사위원회의 3심에서 탈락이 확정됐다. 1차 학과 인사위원회가 김교수를 탈락시킨 이유는 「이력서 허위기재」였다. 91년 연세대 조교수 지원 당시 제출한 이력서에 미국레만대학(Lehman College)의 대리강사(Substitute Instructor)경력이 시간강사인데 전임강사로 기록한 점과 임용 이후 제출한 이력서에 레만대학의 전임강사 및 조교수 재직경력을 합쳐 조교수로 기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세대의 「부당한 재임용 탈락에 반대하는 교수대책위원회」는 『김교수의 재임용탈락은 교수들의 사적인 감정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교수가 연구비 배정을 위한 연구계획서 심사때 같은 단과대 보직교수의 표절을 문제삼은 데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대책위는 또 김교수가 제출한 소명자료중 레만대학에서 보내온 「대리강사」의 자격을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의 전임강사임이 밝혀졌고 임용이후 이력서에 전임강사와 조교수의 약력을 통칭해 조교수로 기재한 것도 일반적 관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세대 물리학과 박홍이 교수는 『이력서 허위기재 지적은 김교수를 탈락시키기 위한 빌미에 지나지 않는다. 김교수의 연구실적 등을 알아본 결과 간호대학에서 가장 높았다』며 『교수재임용제가 학과나 단과대 원로교수의 눈밖에 난 교수를 쫓아 내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수 재임용제가 악용된 사례는 부지기수다. 「교수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대 K교수(영어교육과)도 올해 초 인사위원회의 무기명 비밀투표로 탈락이 확정됐는데 연구실적보다는 학과 원로교수와의 마찰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또 S신학대 L교수는 이사장의 인사비리 해명과 책임 규명을 요구한 끝에 올 2월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K전문대 K교수도 재단의 비리사실을 언론에 흘렸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지난달 재임용이 있었던 대구 K대의 경우 교수협의회와 학생들이 L교수의 탈락은 재단과 총장에 반대한 데 대한 보복성이 짙다며 서명운동을 펴고 있다.
교공임 관계자는 『93년이후 문민정부하에서 대학 및 전문대학에서 61명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연구업적과는 관계없이 잘려 나간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재임용제의 또다른 문제로 재임용에서 부당하게 탈락한 것이 확인돼도 구제받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대법원판례상 대학교원의 지위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신분이 종료되는 임기제에 따른 것이어서 임기가 끝날 경우 임용권자가 얼마든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 또 기간종료에 따른 면직이어서 교육부의 재심청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연세대 여인환 교수는 『대학측이 교수 재임용 여부를 연구실적 뿐만 아니라 품성까지 고려하는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한다고 하지만 객관적 틀이 없으므로 자의적 운용의 소지가 농후하다』며 『오히려 다양한 학문활동을 획일화할 우려마저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과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모임 등 8개 시민·교수단체가 공동으로 교수 1,938명의 서명을 받아 교수재임용제 개정을 위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교수신분 보장을 위한 협의회 회장인 건국대 박동희 교수는 『연구실적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전공 따로 강의 따로’/학과서 필요한 전공 무시 내사람 뽑기가 먼저/영문학 교수가 디자인,교육학자가 치과 강의
『5년 이내에 자네 전공 분야를 맡아 강의할 생각은 말게』
서울 모대학의 K교수는 요즈음 새로 교수에 임용되면 선배 교수로부터 종종 이런 말을 듣게 된다고 전했다.
교육부가 올 국정감사에서 국민회의 설훈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대학의 교수 및 강사의 「전공 따로 강의 따로」현상은 자못 심각하다. 교육대학을 제외한 전국 115개 대학의 6만 3,121개 강좌를 대상으로 교과목의 내용과 담당교수의 전공 일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70개 대학 3,896개 교과목이 일치하지 않았다. 전체 강좌의 6.2%에 달한다.
한 강좌당 수강생을 50명으로 잡을 경우 엉뚱한 전공의 교수나 강사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이 자그마치 19만 4,900여명이나 된다. 교수의 전공과 담당교과목의 불일치 비율이 10% 이상인 대학도 목원대 덕성여대 수원대 서울여대 광운대 부산외대 등 15개나 됐다.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의 장정현(30) 간사는 그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인맥과 학맥, 청탁 등에 의한 「자기사람 심기」와 같은 불공정한 임용비리를 주범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학과에서 필요로 하는 전공분야를 무시한 채 「내 제자」나 친·인척을 채용하는데 혈안이 돼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이 때문에 교과목의 명칭은 다른데 강의 내용은 비슷한 경우가 많다. 비슷한 분야의 전공자가 몰려 있는 학과일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하다.
「전공따로 강의따로」교수들은 교수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대나 전문대에 특히 많다. 지난해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74개 전문대에서 147명의 교수가 자신의 석·박사 전공과 무관한 교과목을 강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회학을 전공한 K전문대 L교수는 제품디자인을 강의하고, 또다른 K전문대의 L교수는 사회산업학을 전공했으나 유아미술 분야를 가르쳤다. 교육학을 전공한 S전문대의 K교수는 치과방사선 분야를, 또다른 S전문대의 C교수는 영문학 전공인데도 실내디자인을, 교육학 박사인 J전문대의 N교수는 전기치료학을 강의했다.
중·고교에서 수학교사가 국어를 가르치는 식의 일이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강의가 아니라 책을 읽어 내려 가는 것 같다』며 불만을 털어 놓곤 한다. 한 교수는 『전공이 틀린 분야를 강의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개강 직전, 또는 강의 시작후에 교과목을 배정하는 것』이라며 『전공분야도 아닌데다 준비할 시간도 없어 부실한 강의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털어 놓았다.<김성호 기자>김성호>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 상담이사 이정민 교수/“교수임용 비리 최대 피해자는 학생”
『대학의 질을 높이는 첩경은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는 겁니다. 실력있는 교수를 뽑으려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요. 경쟁의 원리가 뿌리내리지 않고는 대학개혁은 요원합니다』
서울대 이정민(57) 교수는 지난해 5월 발족한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의 상담이사다.
이 모임은 대학사회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인 교수 불공정 임용을 가려 내는 동시에 모범적인 임용 유형을 개발, 보급하는 압력단체. 창립총회때 70개 대학 220명의 교수가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현재 80여개 대학 430여명의 교수가 활동하고 있다.
교공임이 그동안 수집한 임용비리를 분석한 결과 규모가 큰 대학에서는 인맥과 학맥에 따라 특정인을 끌어들이는 「자기사람 심기」현상이, 소규모 사립대학에서는 재단이나 보직교수들의 전횡이나 부당한 개입이 특히 심각하다고 그는 전했다. 「학교 재정이 약하다」는 이유로, 또 개인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임용대가로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갖가지 임용비리 가운데 이교수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자기사람 심기」. 창조적인 연구활동을 등진 채 동료교수들끼리 편을 갈라 반목·질시하는 것이 모두 여기에서 비롯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교수를 꿈꾸는 사람마저도 교육과 연구활동을 위한 자질 함양보다는 줄만들기에 급급해 하는 등 임용비리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학이 유능한 학생을 유치하는 데는 홍보와 투자를 많이 하면서 좋은 교수를 뽑는데는 왜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며 『실력이 없는 교수를 아무렇게나 뽑아놓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재임용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우리 대학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잘못된 교수임용을 바로잡기 위해 농성하는 동안의 수업손실과 문제의 교수가 새로 임용돼 정년퇴직할 때까지 30여년동안 겪어야 할 수많은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는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는 『교수임용 비리의 최대 피해자는 학생』이라며 『수많은 비리를 보고받고도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교육당국도 문제』라고 지적했다.<김성호 기자>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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