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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신림동 일대만 3만여명/고시촌 낮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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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 신림동 일대만 3만여명/고시촌 낮과 밤

입력
199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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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뜨면서 책상에 앉고 책보면서 쓰러져 잠든다/독서실로 족집게 학원으로/인근 유흥가 밀집/심신 피로 한잔에 풀기도서울 관악구 신림 9동은 300여개의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가장 큰 고시촌이다. 돌아 눕기도 힘들 만큼 좁은 고시원 골방에서는 1만여명의 고시생들이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숙·자취하거나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고시생, 고시학원 수강생까지 합치면 3만명 이상이 이 일대에 몰려 있다. 최근엔 직장을 그만둔 20·30대 직장인과 여성 고시생까지 합세, 고시촌 인구는 해마다 1,000명 이상 늘어나고 있다.

책이 가득한 좁은 방에서 눈뜨면서 책상에 앉고 책을 보다 쓰러져 잠드는 것이 고시생들의 하루 일과다. 상오 7시 관악구 신림9동 N고시원 식당. 허름한 운동복에 슬리퍼 차림의 얼굴이 부스스한 고시생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들어 온다. 조간신문을 뒤적이며 천천히 밥을 먹지만 밥맛은 없다. 아예 새벽까지 공부하고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도 있다.

상오 8시께 주변 S독서실에도 고시생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요즘은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게 유행이다. 창도 없는 1평 남짓한 고시원방에 틀어 박혀 혼자 하루를 보내는 것이 너무 갑갑하기 때문이다. 온종일 책과 씨름하다 보면 머리는 멍해지고 온몸이 결린다. 하지만 계획대로 공부를 마치려면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다. 점심이나 저녁식사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보통이다. 대화를 통해 긴장도 풀고 정보도 교환할 수 있다. 고시원앞에 몇개의 의자가 놓인 곳이나 휴게실이 만남의 장소로 이용된다. 여학생들도 자주 눈에 띈다.

하오 5시, 학원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뜬다. 학원 강의실 앞자리에 미리 자리를 잡아 놓고 와 서둘러 저녁을 먹는다. 하오 6시 C고시학원 3층 강의실에서 열리는 족집게 형법 강좌. 강의실 4개를 터서 만든 초대형 강의실에는 600여명의 수강생들이 빽빽히 들어 차 있다. 자리다툼도 치열하다. 학원측이 뒤에 앉은 학생들을 위해 얼마전 대형 멀티비전을 설치했을 정도다.

마이크를 든 40대 강사가 나타나자 일순 정적이 찾아 들고 바로 강의가 시작됐다. 강사는 중요한 부분과 기출문제를 소개하며 초고속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중간에 한번의 휴식이 있을 뿐인 3시간의 강행군이다. 바로옆 T고시학원은 최근 정예 고시생 20여명을 선발, 아침부터 저녁까지 50분 수업·10분 휴식의 고교 수업방식을 도입한 그룹스터디 강좌를 내놓았다. 대학수능시험 준비와 다를 바 없다.

학원강의가 끝나고 하루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밤 10시. 신림동 고시촌은 또다른 모습으로 바뀐다. 낮동안의 조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 대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유흥가로 변한다. 술집 노래방 당구장 비디오방 등 유흥업소마다 대학생과 고시생 등 젊은이들이 북적댄다.

토요일밤 신림동 녹두거리의 C카페. 자정이 가까와 지면서 젊은 남녀들이 잇달아 들어 왔다. 간간이 허름한 복장의 고시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새벽 1시께는 거의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고시생 한명이 다른 테이블의 20대 여자들에게 접근, 『술 한잔 같이 하자』고 말을 건넸다. 결국 합석해 술을 마시고 한참후 함께 카페를 나갔다. 고시생 심모(28)씨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주말에 한번씩 술을 마시는데 여자들과 즉석에서 테이블 미팅을 한다』고 말했다. 오랜 슬럼프에 빠지거나 과중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 술집 비디오방 만화방 등에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고시생들도 있다. 심한 경우 술과 여자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 돼버린 경우까지 있다.

10년째 고시공부를 하는 이모(32)씨. 명문 법대를 나와 고시를 시작했지만 압박감에 시달리다 술과 여자에 빠졌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여자들을 만났다. 『저녁때만 되면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만난 여자도 수십명이 넘어요. 합격할 리가 없죠』

고시공부를 직업삼아 환락에 젖어 지내는 일부 부유층 자제들도 있다. 「고시 귀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고시공부를 핑계로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서는 이를 모두 유흥비로 탕진한다.

7년간 고시공부를 했다는 김모(30)씨는 여느 고시생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무스를 발라 넘긴 머리와 화려한 옷차림, 짙은 향수냄새.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고시에 뛰어 들었지만 애초부터 공부에는 뜻이 없었다. 집을 나와 자취를 하면서 환락에 빠졌다. 고급승용차에 여자친구들을 태우고 대학가 교외 등지를 돌며 밤마다 술과 환락에 젖었다. 도박에도 손을 대 수백만원대 포커판에 드나들었고 스리쿠션 한번에 1만원씩 내는 내기당구도 즐겼다. 『한때 정신차리고 공부에 전념하기도 했지만 유혹을 견디기 힘들더군요. 노는 버릇이 들어 능률도 안오르지만 가족들 기대 때문에 그만둘 수도 없습니다』<배성규 기자>

◎사법시험에 멍드는 대학교육/고시과목 강의 비법대생 문전성시/전공포기 예사·대학원생까지 가세

사법시험 열풍에 대학교육이 멍들고 있다. 대학마다 법대생은 물론이고 인문대·사회대, 심지어 이공계 학생들까지 고시에 뛰어 들면서 학문의 기초수련장으로서의 대학기능이 급격히 약화하고 있다.

대학도서관은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하고 법대의 「고시과목」 강의실은 늘 만원이다. 연세대 법대 허영 교수(헌법학)는 『수백명의 비법대생들이 강의에 몰리고 있어 정상적인 수업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고려대 법대 김선택 교수도 『고시열풍 때문에 다른 과의 강의에 심각한 「공동화 현상」이 빚어지고 있고 법학교육도 왜곡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서울대 도서관의 경우 시험때를 제외한 평상시에는 사시 준비생이 전체 좌석의 70∼80%를 차지한다. 책상마다 헌법 민법 형법 등 법학서적과 고시 영어책, 고시 국사, 경제학 원론 등 고시 서적들이 쌓여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캠퍼스를 풍미했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고 전공서적을 펴놓기가 민망할 정도다.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 학생은 『90년대 들어 대학에는 고시파와 오렌지파, 운동권 등 3부류가 존재하다가 요즘엔 고시파가 완전히 대세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인문대는 국문·불문·노문·서양사학과 등 상당수 학과의 학생 30∼40%가 사법시험에 매달려 있다. 사회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자연대 지질학과의 경우 4학년생 25명중 4, 5명이 사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지난해 308명의 사시합격자 가운데 서울대 비법대출신이 55명을 차지, 46명에 머문 고려대 법대를 앞질렀다.

연세대 문과대도 사학·철학·문헌정보학과 등을 중심으로 평균 10%가 사시준비생이라는 게 학생들의 얘기이고 고려대 문과대의 경우 동료들 몰래 준비하는 학생까지 합치면 사시생이 30%가 넘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학교측도 고시바람을 부채질한다. 국공립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은 도서관에 이들 고시생을 위한 별도의 공부방을 마련해 주고 재정지원을 하기도 한다. 고시합격생을 많이 배출할 수록 대외적으로 학교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려대는 중앙도서관과 인문강의동에 11개의 사법고시실을 마련, 700여명의 사시준비생을 수용하고 있다. 250명이 공부할 수 있는 행정고시반과 함께 기숙사에 행정고시동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연세대에도 비슷한 규모의 고시반이 있고 성균관대와 한양대 등도 마찬가지다. 일부 대학은 각 대학의 저명한 법학교수를 초빙해 사시특강을 열어 주고 사시 준비생에게 장학금 혜택까지 준다.

대학원생도 고시바람에 휩싸였다.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생의 30% 정도가 사시 준비생이다. 경제학과 대학원생 K씨는 『15명의 동기생중 8명이 사시공부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가 사시열풍의 주된 이유는 변호사가 되면 자유롭고도 고소득이 보장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리학과 석사과정을 마치고 사시전선에 뛰어든 S대 H씨의 「도전의 변」은 거침이 없었다.

『기업체 샐러리맨과 법조인과는 직업의 안정성, 사회적 지위 및 보수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게 사실 아닙니까. 사회의 다변화로 법조인의 위상이 아무리 예전같지 않다고 해도 아직은 그만한 직업이 없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입니다. 게다가 올해부터 사시 선발인원도 증원됐구요. 현실이 이러니 사시준비생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서울대 사회대 대학원생 이모(27)씨는 대학교육의 파행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전공을 포기하고 사법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어요.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도 줄었구요. 순수하게 학문을 하겠다는 사람은 발을 붙이기 힘든 분위기예요. 학교전체가 사시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대학교육이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유성식 기자>

◎합격자 증원이 열풍 부채질/선발제도 개선없인 과열 불보듯

사법시험 열풍의 1차적 원인은 뭐니뭐니 해도 정원을 늘린 현행 선발제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법개혁 작업을 주도하던 세계화 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올해부터 합격자수를 500명선으로 늘리고 97년부터 매년 100명씩 추가로 증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확정, 발표했다.

당시 법조인수 증원 자체가 커다란 진전이라는 환영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학교육 파괴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우려했던 대로 대학생들이 너도 나도 고시생 대열에 뛰어 들었고 직장인 주부들까지 가세, 과열현상을 빚고 있다.

정부는 법조인 양산에 따라 사시 선호도가 그만큼 떨어질 것으로 판단했으나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법조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변함이 없는데다 선발인원이 늘어나자 『그렇다면 나도 한번』식의 기대심리가 확산됐다. 또 최근 국내 경기침체로 기업체의 명예퇴직 바람 등 고용이 불안정해 진 것도 전문직인 변호사 선호경향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시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우선 선발제도가 달라져야 한다는 의견이 무성하다. 고시생 상당수가 좌절을 맛보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의 기회를 놓쳐 버리는 것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큰 손실이기 때문이다.

연세대 법대 허영 교수는 「로스쿨」의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허교수는 『몇개 과목을 달달 외면 법조인이 되는 배출제도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면서 『대학원과정의 로스쿨을 거쳐 정상적인 법률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만 응시자격을 부여하고 응시 가능 횟수도 더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는 주로 현행 법대의 틀을 유지하면서 법대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또 학계와는 달리 선발인원 증원에도 부정적이다. 변협의 홍보이사 송두환 변호사는 『적정 법조인수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을 다시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같은 의견의 수렴은 어렵다. 정부의 사법제도 개혁작업이 이미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개혁안 확정 후 사법개혁논의의 종결을 선언한 바 있다. 로스쿨 문제는 아예 백지화했다. 따라서 현 선발제도는 기약없이 유지될 수 밖에 없고 이에따른 과열 현상 또한 당분간 그대로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유성식 기자>

◎번창하는 고시산업/고시원·학원·출판사·식당 등 재미/월수입 7,000만원 강사도 등장

고시열풍을 타고 고시관련 산업이 번창하고 있다. 고시원, 고시학원, 고시서적 출판·판매 등 직접 관련된 업종뿐 아니라 고시생 식당, 자취방, 한의원, 유흥업소에 이르기까지 재미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시원과 고시학원. 고시원은 신림동 일대에만 300여개가 성업중이다. 평균 40∼50명을 수용하지만 규모가 큰 고시원은 방이 300개가 넘는다. 한달 사용료가 30만원 내외로 시장의 전체규모는 월 30억∼40억원에 달한다.

고시학원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한 강의실에서 600명이상이 강의를 듣는 초대형 강좌까지 생겨났다. 수강료는 10회 강의에 6만원. 수강생들은 『형법강의를 하는 신모강사는 월 2회 대규모 강좌를 통해 7,000만원 이상의 고수입을 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강좌도 수강생이 보통 100∼200명의 대규모다. 이런 대형 고시학원이 신림동에만 7개소에 달한다.

고시관련 서적의 출판·판매도 시장규모가 엄청나다. 3만명에 이르는 사법시험 준비생을 비롯, 행정고시 외무고시 기술고시와 공인회계사 변리사 등 각종 국가자격시험 응시생은 전국적으로 10만명에 이른다. 헌법 민법 형법 등 기본서적과 외국어 경제학 국사 등 각종 고시관련 서적은 판매규모를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서울대 앞에는 고시전문서점 5, 6개소가 성업중이고 학원강의 녹음테이프와 각종 정보 및 정리자료를 취급하는 고시자료 판매점도 수십군데에 달한다.

고시생들을 고객으로 하는 「고시식당」도 북적거린다. 신림동 일대에만 100여개소인 고시식당의 한달 정기식권 가격은 13만원 내외. 개인생활을 중시하는 신세대 고시생이 늘어나면서 자취방도 늘어 났다.

고시생을 겨냥한 술집 커피전문점 비디오방 만화방 노래방 당구장 등 유흥업소들도 고시촌 골목마다 들어서 있다. 관악구청에 따르면 고시원 밀집지역인 신림9동과 신림2동의 경우 카페 레스토랑 호프집 등 술집이 300여개소, 비디오방 40여개소, 당구장 50여개소, 커피전문점 20개소. 술도 파는 24시간 편의방이 15개소나 된다. 이들 업소는 매년 10% 이상 늘어나고 있다.

건강관련 업종도 재미를 보고 있다. 보약을 지어먹는 고시생들이 늘면서 신림동 일대 한의원들이 호황을 누리는가 하면 체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단학선원 등 기수련 도장도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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