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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출세 첩경인가 인재들의 무덤인가/어느 고시생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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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출세 첩경인가 인재들의 무덤인가/어느 고시생의 자화상

입력
1996.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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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던 법대생/그러나 번번이 아쉬운 낙방/‘한번만 더…’ 미련에 세상 등진채 법전과의 싸움/어느덧 서른도 훌쩍/합격은 멀어져가고 포기할 수도 없고…『합격할 자신은 점점 없어지고 이제와 그만둘 수도 없고…』

낙방의 아픔을 씹으며 또 한해를 보내는 노장 고시생 이종수(34·가명)씨의 심사는 착잡하기만 하다.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14년. 고시에 청춘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방안을 가득 메운 손때 묻은 고시서적들 뿐.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 몸은 나이에 비해 일찍 늙어 버렸고 마음도 황폐해진지 오래이다.

가끔씩 친구들 소식이 들려올 때면 더욱 비참해 진다. 『OO는 이번에 과장 승진했고 OO는 변호사 개업했다며…』 술한잔 하고 잠을 청해 보지만 정신은 더욱 또렷해 지고 지난일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친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K대 법대에 입학할 때만 해도 그는 법조인을 꿈꾸는 촉망받는 젊은이였다. 대학에서도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고 졸업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이래 매년 될 것 같으면서도 간발의 차로 떨어졌다. 『시험운이 없는지 1차시험 한번 안되더라고요. 뒤늦게 군대에 갔다 온 뒤 계속해야 하는지 그만둬야 하는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미련이 너무 커서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그는 신림동 고시촌을 찾았다. 세상을 등진 채 공부에만 매달렸다. 합격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1점차로 낙방이었다. 낙담은 컸고 실의와 방황의 나날도 길었다. 그렇지만 10년 가까운 지난 세월이 아까웠다. 「1년만 더」하며 버티다 보니 어느새 서른을 훌쩍 넘었다.

『이젠 합격할 가망이 거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아요. 고시공부를 시작하던 때의 이상과 포부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왜 여기 이러고 있는지 자문할 때가 많지요』

이씨가 생활하는 신림9동 산동네 고시촌에는 50여개의 크고 작은 고시원에 1,000여명의 노장 고시생들이 법서와 씨름하고 있다. 큰길가의 고시원에 비해 싸고 음식 인심이 좋을 뿐 아니라 사람의 왕래가 적어 잡념과 유혹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질 수 있다.

『주로 30대가 많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까지 있습니다. 의지로야 20대에 뒤지지 않지만 35세가 넘으면 머리가 굳어져 힘들어요. 「법서를 모두 불살라 버리고 하산하겠다」고 수십번도 더 결심하지만 실제 내려가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청춘을 바쳐 공부했는데 이제와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딱히 할 일도 없고요』

중도포기하고 취직하거나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1년도 안돼 돌아 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련이 너무 많아 다른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고시는 늪입니다.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빠져 나오기 힘들어요. 오죽하면 우리 스스로 고시병자라고 하겠어요』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대인 기피증을 가지고 있다. 친구는 물론이고 친척, 가족들까지 피한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끊긴다. 『피해의식이나 자괴감이 엄청나요. 사회가 고시생을 제일 쓸모 없고 불쌍한 인간으로 본다고 생각하지요. 저도 고시공부하고 있다는 말 하기가 제일 망설여져요』

과거를 들추지 않는 것도 이곳 사람들 사이의 불문율이다. 누구나 과거에는 「잘 나가던」 사람들이다. 지난 얘기를 하면 서로 자존심만 상하고 왠지 비참하고 착잡한 생각에 사로잡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고시생들의 생활은 단조롭다. 밥먹고 산책하는 것을 제외하면 종일 2평이 채 안되는 방에 틀어 박혀 법전과 씨름한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먹고 뒷산 약수터로 산책을 나가요. 고시동료들과 얘기 나누는 게 유일한 낙이죠. 가끔씩 응어리가 쌓이면 술한잔 하고요』 새벽같이 일어나 약수터에서 물을 뜨고 운동을 하는 「참새형」 고시생도 있지만 세월이 쌓일 수록 밤늦게 공부하고 한낮이 다 돼 일어 나는 「올빼미형」으로 바뀐다.

오래 공부하다 보니 다 아는 내용같아 대충 넘어간다. 「아는 것도 없고 모르는 것도 없는」상태다. 게중엔 무기력증에 빠져 술집 비디오방 만화방 등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씨는 요즘 잠 못 이루는 날이 많다. 자리에 누워도 눈이 말똥말똥해지고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화려했던 지난날, 부모님 얼굴, 옛애인, 멀어져간 친구들….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쳐 새벽녘이 돼서야 겨우 잠이 든다. 가슴이 너무 답답할 때는 운명철학관을 찾기도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앞으로 인생이 어떻게 될지,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다.

『지난해 집에 내려갔더니 아버님이 결혼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사실상 고시공부를 그만 두라는 얘기였어요. 서른이 훨씬 넘도록 제앞가림은 커녕 장가도 못가는 자식모습이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부모님 마음을 이해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참담한 심정으로 몇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길에 들어선 걸 후회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꿈 명예 인간관계 모두를 잃었다. 『솔직히 사법시험은 이제 자신이 없어요. 올해는 행정고시와 법원사무관 시험도 봤죠.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지만 이것 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요. 법무사 시험도 볼 생각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착하고 순진하다. 능력도 있고 자기생활을 관리할 줄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능력을 펼칠 기회가 없다. 『인재가 썩고 있는 것이죠. 마흔이 넘은 사람들 가운데는 식당 서점 고시원 학원강사 등을 하며 신림동 고시촌 주변을 떠도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합격하면 가슴속 큰뜻을 펼치리라는. 『낙방할 때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지만 아주 희망을 잃진 않아요. 하루에 열번도 더 희망과 절망사이를 오가지요. 그래도 이곳을 떠나진 않을 겁니다. 고시는 제 인생 자체이니까요』

◎“비전없는 직장생활은 싫다”/직장인도 고시열풍

『직장생활이 너무 비생산적이고 비전이 없었어요. 기껏 하는 일이 서류정리와 상사 눈치보기였어요. 언제 명예퇴직 대상이 될지도 알 수 없었고요. 그래서 사법시험에 인생을 걸기로 했습니다』

종합금융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다 93년 사표를 내고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온 손모(30)씨는 『때론 공부가 지겹고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불안감이 엄습하지만 후회는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법대출신이다. 사법시험에 대한 미련이 유난한 때문이다. 법대출신자 가운데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더라도 사시에 못 붙으면 성공한 것이 아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법대출신의 상당수가 직장에 다니면서 「습관적으로」 사시에 도전하고 일부는 아예 사표를 던진다는 것이다.

서울대 법대출신 김모(37)씨는 졸업 12년만인 올해 사시에 합격했다. 재학시절 몇차례 낙방하고 84년 대기업에 취직했던 그는 사법개혁 논란이 일기 시작한 94년 사직서를 내고 2년간 신림동 고시촌에 틀어 박혀 공부에만 전념했다. 『94년 당시 사시합격자가 증원될 것같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속에 새로운 각오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늦기는 했지만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M대 법대출신으로 1년간의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93년부터 사시전선에 뛰어든 이모(29)씨는 모아둔 돈이 떨어져 레스토랑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에는 신문배달도 한다. 그 또한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직장생활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공대와 이과대 등 비법대출신이 사시를 위해 직장을 버린 경우도 적지 않다.

90년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수련의 과정을 밟던 김모(33)씨는 지난해 사시공부를 시작, 1차시험에 합격했으나 올해 2차에서는 떨어졌다. 김씨는 『의사는 애초부터 적성에 맞지 않았다』면서 『법조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또 서울대 공대 출신인 박모(29)씨는 석사학위를 받고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됐으나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서』 유학을 포기하고 93년 고시촌에 들어 갔다.

92년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에서 일하던 박모(28)씨는 지난해말 휴직계를 내고 사시공부를 시작했다. 회계사로서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회계법인에 재취업하기가 그만큼 어렵지만 조세와 통상문제 전문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도박」을 감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부들도 도전장을 던진다. E대 법대출신인 이모(26)씨는 검사인 남편의 권유로 두살난 아기를 시어머니에게 맡겨 두고 지난해 고시원에 들어 와 책과 씨름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둔 고시생들에게는 불안의 그림자가 늘 따라 다닌다. K대 법대를 졸업하고 2년간 직장을 다니다 94년부터 3년째 고시원에서 살고 있는 김모(29)씨는 요즘 불면증에 시달린다. 『2년안에 승부를 할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해 지난해 1차시험에는 합격했지만 2차에서는 떨어졌어요. 이 생활을 계속해야 할지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할지 갈등이 큽니다. 돈도 다 떨어졌고 공부를 계속할 경우 재취업은 영원히 포기해야 하니까요』<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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