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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화·집단화만이 살길”/의사·변호사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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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화·집단화만이 살길”/의사·변호사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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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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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성 벗고 경쟁력 높이기/경쟁자끼리 ‘연합전선’/법률회사·집단개원 늘어전문화·집단화는 의사와 변호사의 생존전략이다. 「잘나가는 전문직」으로 통하던 의사와 변호사도 이제는 「개인기」만으로는 수익을 보장받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

변호사와 의사들은 규모의 영세성에 따른 경쟁력 저하를 막기 위해 경쟁자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거나 전공분야를 한결 세분화하고 있다. 변호사들은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의사들은 진료과목이 다른 의사들과 「집단병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경비절감과 분야별 전문화를 도모하자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김성남 변호사는 『전문화야 말로 가장 두드러진 추세』라며 『최근 법률회사나 합동법률사무소가 많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변호사의 경우 단독개업했을 때는 형사 민사 특별사건 등을 도맡아야 하는 반면 수십명의 변호사가 모인 대형 법률회사는 의료 조세 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맡을 수 있다.

「김&장」 「태평양」 「율촌」 등 대형 법률회사의 경우 50∼100명의 변호사가 20∼30개 전문분야로 나뉘어 팀을 이루고 있다.

단독개업 변호사들도 전문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90년 3월 서초동에서 개업한 신현호 변호사는 일찌감치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를 자임해 활약하고 있다. 또 환경운동연합의 환경법률실장을 맡고 있는 오세훈 변호사는 일조권침해사건 등 환경문제 전문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연예인들의 초상권이나 명예훼손 등 연예인 권리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독개업 변호사의 전문화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전문화가 오히려 「벌이」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대형화가 전문화의 전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신변호사는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로서의 어려움을 이렇게 실토했다. 『사무실 운영을 위해서는 한달에 의료사건이 5건 이상 들어와야 하는데 현재는 한달 평균 2, 3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 의료소송은 대개 2, 3년을 요하기 때문에 별로 경제성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의료사고 전문변호사로는 성공했지만 그것만으로 밥벌이가 안돼 다른 사건을 함께 취급하지 않으면 운영이 어렵습니다』

갈수록 법률회사가 늘고 있는 것도 공동화로 경비를 절감하고 전문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법률회사는 94년 39개에서 95년 45개, 96년 53개로 매년 늘어나고 있다. 또 3, 4명이 공동으로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어 사무장이나 경리직원을 공동으로 고용, 인건비와 임대료를 절감하는 예도 많다.

병원의 경우도 의사들이 일정지분씩 공동 출자해 운영하는 「집단개원병원」실험이 한창이다.

서울 선릉역 인근의 광혜병원은 집단 개원제로 출범한 대표적인 병원. 특수클리닉 중심의 이 병원은 신경외과 정형외과 내과 안과 치과 피부과 정신과 등의 전문의 11명이 모여 디스크클리닉 레이저관절경클리닉 대장항문클리닉 두통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개인의원과 종합병원을 절충한 운영방식이다.

이곳 의사들은 공동경비로 4억∼5억원하는 컴퓨터단층촬영기(CT)와 10억원이 넘는 핵자기공명촬영기(MRI) 등 대학병원 수준의 첨단 고가장비를 갖추고 공동사용한 뒤 사용료를 낸다. 집단개원병원의 경우 여러명이 필요한 부분에만 투자함으로써 중복투자가 없고 시설과 장비의 효율적 활용이 가능하다.

광혜병원처럼 10여명의 의사가 모여 집단개원한 병원은 흔치 않지만 진료과목이 다른 전문의들이 순전히 경비절감 차원에서 3∼5명씩 모여 동업형태로 운영하는 경우는 많다. 광주 중흥동 한솔내과는 개원의 4명이 모여 순환기 소화기 내분비 호흡기내과로 진료과목을 세분화해 내과계통의 전문병원으로 자리잡았다. 이 병원도 내과분야에서는 종합병원 수준의 첨단 의료장비를 갖춰 놓았다.

광혜병원 박경우 원장은 『개인 의원으로는 경쟁력이 없어 이런 운영방식을 도입했지만 임시방편일뿐 완전한 해결책이나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집단화를 통해 한사람이 운영하는 일반 개인의원보다는 신뢰성을 높일 수 있기는 하다』고 말했다.

◎경기침체 소송 격감/대형병원에 설땅 잃어/‘탈서울’ 바람

의사와 변호사의 탈서울 바람이 거세다. 치열한 경쟁과 비싼 임대료 때문에 경영난에서 벗어 날 기미가 없는 서울을 떠나 지방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변호사들의 지방 이전은 지난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따르면 94년 19명만이 지방으로 옮겼으나 작년에는 2배 가까운 36명이 지방으로 내려갔다. 올해에도 11월30일 현재 33명이 지방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변호사의 탈서울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전체적인 경기후퇴가 큰 원인이다.

변호사들은 『경기가 활성화해야 기업투자와 거래가 많아 분쟁이 잦아 지는데 지금은 빚을 받아내기 위한 경매사건만 늘고 있다』며 『불경기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김성기 회장은 『지난 여름 이후 눈에 띄게 소송의뢰 건수가 줄어 들었다』며 『변호사들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경영난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1일자로 수원지법 평택지원과 수원지검 평택지청이 신설되자 서울에서도 기반이 탄탄하던 P·S·L·H 변호사 등 11명이 앞다퉈 내려가 평택지원 옆에 사무실을 차렸다. 경쟁이 심한 서울보다는 경쟁자가 없는 지방에서 미리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경기 안성이 고향인 S변호사는 『고향 근처에서 일하기 위해서』를 사무실 이전의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그는 서울에서 20년씩이나 변호사 생활을 했고 현재도 서울의 소송을 맡고 있으며 집과 가족은 서울에 있다. 서울 서초동과 마포에서 10여년 가까이 변호사 생활을 해 온 H변호사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평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사들도 변호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병원과 재벌그룹이 운영하는 병원때문에 개인의원과 중소병원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 개원하는 의사도 서울보다는 지방을 선호하고 있다. 피부과의 L씨는 최근 3년동안 서울 지역에서 대형병원이 없는 4, 5곳을 전전하다 결국 수원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송파구 김인호 소아과원장은 『예전에는 의사들의 특성상 지역이동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이동이 10년전보다 50%이상 늘어났다』며 『서울에서는 대형병원의 득세로 개업의들이 돈방석에 앉기는 고사하고 품위유지조차 힘들어 문닫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가 매년 전년도 5월1일부터 당해년도 4월30일까지 조사해 작성하는 「전국회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95년 전체 개원의 1만3,519명중 서울 개원의는 4,098명으로 전체의 30.31%였으나 96년에는 전체 개원의 1만2,616명중 3,693명 29.2%로 떨어졌다. 반면 6대 도시를 제외한 시지역은 95년 31.3%(4,235명)에서 96년 35.8%(4,524명)로 늘어났다.

대한의사협회 최인수 홍보실장은 『지방으로 이전하는 경우는 통계에 잡히지 않고 있으나 휴·폐업하는 의사들 대부분이 지방에 다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민·형사 전문 합동법률사무소 연 황상현 변호사/혼자 다하던 ‘보따리시대’는 갔죠

지난 8월 「열린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한 황상현 변호사는 『혼자서 이것 저것 도맡는 「보따리 장수」시대는 지났다』며 『전문화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열린합동법률사무소 공동 설립자인 이건웅(사시 6회) 황상현(사시 8회) 하철용(사시 14회) 변호사는 올 7월까지만 해도 법원에서 「잘나가는 판사」였다. 이·황변호사는 각각 이일규·김덕주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아 왔다. 일찌감치 대법관 감으로 꼽히기도 했다. 하변호사도 서울 민사지법 부장판사 시절 고법부장 승진 「0순위」였다.

그런데 그들이 일을 냈다. 재야의 전문화를 외치며 합동법률사무소를 차린 것이다.

황변호사는 「김&장」이나 「태평양」 등 대형 법률회사는 전통적인 소송보다는 회사·금융업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법정변론은 10∼20%에 불과해 정작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법률서비스와는 동떨어진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민·형사 행정사건 등 전통적 소송사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률회사를 만드는 게 3인의 목표가 돼 있다.

이들은 1년 정도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한 뒤 10여명의 변호사를 영입, 법률회사로 발전시키고 분야도 노동 환경 지적재산권 등으로 차차 세분화해 나갈 계획이다. 우선 취약분야를 보강한다는 차원에서 특허소송 전문변호사인 전용희 변호사를 영입한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들 앞에도 걸림돌이 있다. 전문변호사를 찾기보다는 일단 해당사건의 담당판사와 가까운 변호사를 찾아 인맥으로 해결하려는 의뢰인들의 의식에 아직 뚜렷한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황변호사는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지정하고 찾아올 경우에도 양해를 얻어 소송의 성격을 따져 적임자에게 맡기고 의뢰인이 당초 지명한 변호사에게는 보조역할을 맡기는 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황변호사는 90년 초대 수석 사법정책연구심의관 시절 사법개혁의 토대가 된 「사법정책자료」를 펴냈었다. 이때 재판의 전문화 문제를 제기, 전문법원 설치를 제안했다.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98년이면 특허법원 행정법원 등 전문법원이 생겨난다. 그래서 황변호사의 소송사건 전문화 시도도 우연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황변호사는 『재야가 튼튼하고 건강하면 재조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결국 재야의 전문화는 건전한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며 『법원도 업무의 산술적 배분보다는 법관 개개인의 특성과 자질을 살려 주는 인사정책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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