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거래 처벌할 근거가 없어/“이번기회 법률 대체해야” 지적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 항소심재판부가 노태우씨의 비자금을 변칙 실명전환해준 재벌총수 등의 업무방해죄에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지하자금을 양성화하고 검은 돈의 흐름을 막겠다던 금융실명제의 허점이 법원 판결로 재확인됐다. 이에 따라 법조계 일각에선 유명무실해진 현행 「실명거래 등에 관한 긴급명령」(긴급명령)을 법률로 대체, 차명거래를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항소심재판부는 16일 노태우씨의 비자금을 변칙 실명전환해 숨겨준 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과 이경훈 전 대우 사장, 금진호 전 의원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금융기관은 거래자의 실명여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지 돈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가를 확인할 의무가 없으며, 따라서 피고인들의 행위가 금융기관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긴급명령」에 차명 또는 도명거래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는 마당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다. 현행 긴급명령은 실명제를 위반한 금융기관 종사자에 대해 5백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차명거래를 하는 예금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전두환씨의 비자금을 쌍용그룹 협력사 임직원 명의로 실명전환해준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김석원(전 쌍용그룹 회장) 신한국당의원에 대한 처벌근거도 없어지게 된다.
검찰관계자는 『실명제의 취지가 검은 돈의 거래를 막자는 데 있는 만큼 법규상 허점을 이용한 변칙 차명거래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모순』이라며 보완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검찰은 이번에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 3명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하기로 했다. 검찰은 『그동안 차명거래를 한 예금주나 이를 알선한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해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전두환씨의 무기명 채권을 변칙 실명전환해준 혐의로 1,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상고한 정병득 장기신용은행 대리에 대해 업무방해죄를 인정,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김상철 기자>김상철>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