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생활 모두 철저한 원칙주의자/의정도 대충은 싫다/자료 직접챙기는 ‘정책형’『남자의 목소리냐, 여자의 목소리냐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장의 타당성입니다』
국민회의 추미애(38·서울 광진을) 의원.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관심을 끌어모은 당찬 젊음. 단지 여성이기 때문에, 판사였기 때문에 주목했던 것만은 아닐 것이다.
정치인답다는 것. 한때 적당한 타협과 눈치, 배짱이 정치인다운 것이라 오해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젊은 정치인들에게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예리한 비판, 의욕적인 실천으로 가득찬 그들의 스타일에서 진정 정치인다움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의 스타일은 정치나 생활에서나 모두 원칙주의다. 그는 옳고 그름을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10월9일 국회 내무위의 서울경찰청 감사장.
『듣기 싫은 분들은 나가세요』 산전수전 다 겪은 정치판의 노장들에게 호통치는 추의원.
『저는 이번 한총련 사건에 대해서 안타까운 몇가지 사례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여성으로서 입에 담지 못할 말들도 서슴없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총련 사건 수사과정에서의 경찰의 여학생 성추행에 대한 추궁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원칙주의는 단호하고 당찬 성격과도 통한다. 주위사람들이 「화끈하다」, 「뒤끝이 없다」고 평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화가 날 때면 불같이 면전에 대고 퍼붓는다. 마음 속에 꿍하니 담아 두거나 다른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아래 사람들에게 푸는 일도 없다.
그는 정책형이다. 정치인으로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조직, 돈, 연줄 보다는 머리로 정치를 하고자 한다. 우선 치밀하게 자료를 챙긴다. 이번 상임위를 위해 새벽까지 한 달동안 자료와 싸움했다. 비서관들에게만 맡겨두지 않는다. 특별히 교수 등으로 이루어진 자문단도 없다.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하고 자료를 검토했다. 그가 내무위 소속의원들로부터 「가장 뛰어나게 활동한 의원」으로 뽑힌 것도 이같은 노력 때문이다.
원칙에 대한 고집은 판사시절부터 유명했다. 법정도 공안당국의 영향력 속에 있었던 86년. 그는 이념서적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청구를 기각했다. 『그런 영장에 제 이름 석자를 남길 수는 없었습니다』라고 회고한다. 시위학생의 즉심재판 때 방청하는 정보과 형사에게는 『즉심은 방청이 허용되지 않으니 나가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사랑과 결혼에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 보인다. 한양대 법대 동창이자 자신보다 2년 늦게 사법고시에 합격한 서성환(41) 변호사와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 부모의 반대가 컸다. 서변호사가 고등학교 시절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고, 대구가 고향이던 추의원의 집안과는 달리 서변호사는 전북 정읍이 고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를 설득했다.
그의 여성관은 능력주의다.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남자든 여자든 능력에 따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그래서 그는 국회의원으로서의 어려움도 여성정치인이기 때문이라기 보다 야당 정치인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이들 교육에 관한 한 그는 「방목」하는 스타일이다. 초등학교 3년, 1년, 네살짜리 아이가 있는 그는 자신이 성장한대로 가르치겠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서 그런지 애써 많은 것을 가르치기 보다는 부모가 그릇된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애가 피아노 배우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아이들은 동네 뒷골목으로 몰려 다니는 꼬마들과 다를 것이 없다.
추의원의 패션은 따로 없다. 있다면 소신과 당당함의 패션이다. 자신만의 옷입기 스타일은 특별한 것이 없다. 옷은 편하면 되고 머리도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만 국회 미용실에 갈 정도다. 자기 주관을 가지고 소신있게 입는 것이 추미애 브랜드이다.
가난한 세탁소집 둘째 딸로 보냈던 어린 시절은 그의 소신을 만들어 온 밑거름이었다. 『출신 환경이나 배경이 다를지라도 사회에서의 출발 조건은 모두가 똑같아야 합니다』
그를 「재미있게」 인터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 이외의 것에 대해, 가정이나 신변 잡기, 주변 문제, 여성스러운 화제 등에 대해 그는 의도적으로 함구한다. 거기에는 「얼굴」이나 이미지보다는 의정활동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자신만만함과 도도함이 있다.<유병률 기자>유병률>
◎‘편견의 그늘’ 여성 정치인/옷차림·결혼·재산 등/남성이면 지나칠일도 호사가들 입방앗거리
『15대 국회는 파행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여성 의원에 대한 보도를 보면 어느 의원이 약혼식장의 차림이어서 구설수에 올랐다든지 한복차림으로 나왔다는 등 대부분 옷차림을 화제로 올렸다. 「신세대 패션」, 「여성 의원들의 패션경쟁」 등의 기사 제목은 「논쟁, 토론」 등의 제목으로 보도된 남성 의원들에 대한 것과 대조를 보였다』
국회 개원 직후인 지난 6월21일 국민회의 신낙균 의원이 「여성신문」에 기고한 글의 일부이다. 신의원은 여기서 여성 의원을 국회파행은 뒷전인 채 옷차림에나 신경쓰는 무신경한 정치인들로 다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한 여성 정치인은 모두 9명. 추미애 의원과 임진출 의원(경주을·당시 무소속·현 신한국당)이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권영자(신한국당), 오양순(〃), 김영선(〃), 정희경(국민회의), 신낙균(〃), 한영애(〃), 이미경 의원(민주당) 등이 전국구로 당선됐다.
당선직후 이들의 프로필에는 「미혼」 「미모」 「몇살 때 결혼」 등의 신변잡기적 사항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재산공개땐 「남편 재산이 더 많아」라며 의원들이 남편의 「재력」에 기대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또 모의원이 짧은 치마로 등원했다는 사실도 호사가들에겐 입방앗거리였다.
『아직도 뭔가 트집잡힐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남성정치인들 같으면 그냥 지나칠 일도 여성의원이 했다 하면 문제가 되는 수가 많다.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 정치인이 더 많아져야 상황이 더 개선될 것으로 본다』(권영자 의원)
의원들이 겪는 곤란은 전직 여성 장관들에 비하면 그래도 나은 편. 김영삼 정부 초기 단명으로 물러난 3명의 여성장관 역시 「험한 꼴」을 당했다.
행정 경험은 차치하고더라도 가십성 시각도 이들을 침몰시킨 요인이었다.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은 「고집센 노처녀 장관」이나 「말뒤집기 바쁜」 (내신제 파문 당시) 사람으로 자질 시비에 올랐다. 황산성 전 환경부장관은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거나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소리나 질러대는 고집불통으로 묘사되기 일쑤였다. 정말 이 땅의 여성 장관은 그토록 「이상한」사람들이었을까.<박은주 기자>박은주>
□약력
58년 대구 출생·38세
77년 경북여고 졸업
81년 한양대 법학과 졸업
85년 춘천지방법원 판사
93년 전주지방법원 판사
95년 광주고등법원 판사
95년 국민회의 부대변인
96년 15대 총선 서울 광진을에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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