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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왜 가나?/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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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 왜 가나?/조두영 서울대 의대 교수·정신과(화요세평)

입력
1996.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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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꿀이죽 최빈국서 OECD까지 달려와/반탈진된 심신 위로하는 ‘작은 축제’10년전만 해도 번듯한 망년모임이라면 멋쩍어하는 참석자들을 잡아두려고 비싼 돈을 내고 인기연예인을 모셔왔는데 요즘은 사회만 잘 하면 좌석에서 무명가수가 쏟아져 나와 시간가는 줄 모른다. 모두가 「노래방」 덕택인데 이제는 한 술 더 떠 노래는 물론 무대매너까지 가르치는 노래교실과 개인과외가 성행해 이 분야 스승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를 사이조차 없다. 「한반도 족속들은 좀 산다 하면 가무에 정신을 못차린다」고 흉보던 옛 중국사람 말이 과연 맞기는 맞다.

노래방, 왜 이리 동네방네에 빽빽이 생겨 심지어는 칠팔십대 노인들마저 자식 손에 끌려가기를 학수고대할 지경에 이르렀는가. 다 그럴만한 사회심리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번 꼽아나 볼까.

첫째 부를 죄악시하는 하향평준 지향적인 사회에는 예로부터 사치가 허용되는 무리가 있었으니 연예인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연예인의 인기는 돈이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이 현대판 우상이 바로 마돈나요 김건모다. 사람들은 이런 인기연예인을 겉으로 경멸하고 천시하나 속에서는 부러워하고 닮으려 하는데, 우리사회가 이렇기 때문이다.

둘째 우리는 감정노출을 억제당하고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초에 한반도를 석권한 주자학은 인간의 수평관계보다 상하관계를 강조해서 위 아래 서로는 서로에게 자기 감정을 표출하지 않음을 미덕으로 가르쳐 머리속에 다져 넣게 했다. 이 상황의 탈출구가 남자에게는 술자리요, 여자에게는 노래였다. 노래를 한다는데 말라고 할 수 없었으며 게다가 윗사람 앞에서도 가사에는 존대말을 붙일 필요가 없어 감정풀이가 한결 쉬웠고 그래서 불만과 애환을 일반화시킨 「타령」같은 것이 생겨, 사회적 숨통을 틔워 주었다. 즉 노래라면 면책이 되어온 셈이다.

셋째 예부터 농경사회나 어업사회에서 노래로 사람들 흥을 돋우어 작업능률 향상을 유도해오던 습관 때문이다. 서양사람 가운데는 음치가 많은데 이는 그들 수렵사회에서는 함께 모여 노래 불렀다간 사냥감이 놀라 도망가기 때문에 목청 좋은 자는 오히려 몰매감이어서 그러하다. 그런 서양사회의 예외가 농어업이 융성한 남부 이탈리아인데, 바로 명창 배출지역이다. 한 세대전 이탈리아 영화 「하녀」에서 소피아 로렌이 동네사람과 모를 심다가 흥에 겨워 그 롱다리 위에 얹힌 가슴과 엉덩이를 박자 맞춰 요란하게 흔들어대어 내 숨을 넘어가게 했던 일이 지금도 기억난다.

넷째 좁고 컴컴한 노래방의 울긋불긋한 조명이 우리를 쉽게 심리적으로 퇴행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서 부모가 시키는대로 한 곡조 뽑으면 무조건 『잘 한다』라고 박수 받고 사랑받던 그 꿈속 시절로 돌아가 세파에 찌든 심신을 잠시나마 반최면상태에 맡긴다. 우리처럼 한세대만에 꿀꿀이 죽 먹던 최빈국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까지 단숨에 치달려와 반탈진된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는가.

다섯째는 노래방 마이크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다. 마이크는 모양 무게 크기에서 남근의 확대판인데다 소리마저 커지니 남자들은 자기존재 확대라는 착각에 빠져 자신감을 얻으며, 여자들은 평소 숨겨오던 남근선망이 충족되는 묘미를 맛본다. 마을마다 며칠씩의 축제가 일년에 몇번씩 있는 서양과 일본사회에서는 그때마다 격렬하게 본능적 욕구를 발산해서 심신피로를 풀지만 그런 것이 없는 우리사회는 이제 작은 축제나마 노래방에서 자주 자주 벌이는 대안을 스스로 개발해낸 것이다. 그래서 몰린다.

요컨대 노래방은 우리에게 자유롭게 자기 주장과 자기 감정표출을 하도록 하는데 이르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러니 내년 대권장악을 꿈꾸는 여 7룡으로서는 아직 꿈쩍 말라는 김영삼 대통령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웅지를 내보일 길이란 연말 연시 모임 족족 손을 들고 나아가 「경복궁 타령」을 구성지고 우렁차게 부르는 일일 것이다. 아울러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공조를 부르짖는 야쪽 두 노룡께서는 이제부터 각기 『너도 먹고 물러가고…』라는 잡귀 쫓는 무당타령을 과외선생에게 배우는 것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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