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업무방해죄 ‘무죄’ 파격/차명거래 위법성 인정 안해 유사재판 큰 영향 미칠듯/기소 재벌총수 8명 1·2심 거치며 전원 집유·무죄 판결비자금사건 항소심에서 뇌물공여 혐의로 1심에서 실형선고를 받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 3명에게 예상대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그러나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이경훈 (주)대우 대표에게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파격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기소된 재벌총수 등 8명이 항소심을 거치며 전원 집행유예와 무죄판결을 받았다.
1심 재판부가 재벌총수 4명에게 실형을 선고하는 「초강수」로 정치자금 수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면 항소심 재판부는 나빠진 경제사정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양형이유를 「지상의 수로와 지하의 미로」라는 특유의 비유법으로 설명했다. 권성 부장판사는 『국가를 다스리고 정치를 하는데 돈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돈의 흐름을 막을 수도 없다』며 『그러나 돈의 흐름과 양을 통제하고 국민들에게 공개하는 것이 민주주의국가의 최선의 정치형태이자 인류의 이상』이라고 서두를 밝혔다.
지상의 수로를 따라 흘러야 할 물이 지하의 미로를 따라 흐르게 한 1차적 책임은 수로를 막고 미로로 물줄기를 돌린 권력자와 추종자들이 져야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전·노씨 등이 제기한 「성금론」은 정치자금법 등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돈인만큼 명백한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금융기관의 실명전환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에 대해 『표면상 거래자가 자금의 실소유자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금융기관의 업무가 아니다』라고 차명거래의 위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그동안 검찰이 차명예금 등 실명제 위반에 대해 유일하게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던 업무방해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금융실명제 긴급명령을 둘러싼 실효성 논란과 함께 검찰 수사와 유사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벌회장들중 가장 만족해 한 사람은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그는 업무방해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을 뿐 아니라 90년 11월 노씨에게 100억원을 제공한 혐의는 공소제기가 가능한 11월28일 이후에 뇌물이 전달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면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뇌물전달의 중간다리 역할을 했던 5·6공인사들은 희비가 엇갈렸다.
전 청와대경호실장 이현우 피고인은 뇌물제공에 적극 개입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1심형량인 징역 4년이 그대로 유지됐고, 안현태 피고인도 1심형량인 징역 4년에서 징역 2년6월로 감경됐으나 실형이 유지됐다.
이원조 피고인은 집행유예가 선고됐으나 1심에서 6개월 깎인 징역 2년6월을 선고받는데 그쳤다. 특히 재판부는 이피고인을 5·6공에 걸친 「지하미로의 설계자」로 지목했다. 한편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이 선고됐던 금진호, 성용욱, 안무혁 피고인 등 3명은 초범과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는 이유 등으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기사회생했다.<이태희 기자>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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