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와 40대사이 ‘샌드위치세대’서 30대에 의한 30대를 위한 소설·노래·드라마 등 문화상품 봇물/“복고적 감상주의일 뿐” 반론속/이제 그들의 정체성 찾기가 시작됐다한 비평가는 말했다. 『80년대가 광장의 문화였다면 90년대는 밀실의 문화』라고. 그의 분석이 유의미하다면 광장의 문화에 묻혀 20대를 보냈고, 이제 밀실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세대가 바로 지금의 30대이다.
30대 문화.
이 세대에 요즘 「문화 상품의 세례」가 쏟아진다. 30대 생산자에 의한 30대 문화들이 30대 소비자에 의해 향유되고 있는 것이다. 대중이냐, 순수냐, 문화의 장르를 가릴 것 없이 「30대」를 타깃으로 한 문화 상품은 날마다 새 얼굴로 재생산된다.
고개를 들고 있는 30대 문화, 그 소용돌이의 실체는 무엇일까. 「30대」라는 인구학적 속성의 공통분모를 빼고 난 이 문화의 알갱이는 무엇일까.
대중문화의 「30대 주인공 만들기」는 이제 무시 못할 유행이다. 드라마 「애인」(MBC)이 가정이 있는 30대 전문직 남녀간의 로맨스를 통한 자기 바라보기였다면, 「형제의 강」(SBS)은 30대의 유년과 「어제」를 되돌아 봤고, 「간이역」(MBC)은 30대의 「오늘」과 그들의 아버지 시대를 이야기한다.
쇼프로그램도 30대를 향해 손짓하고 있다. 고정 프로그램 중에선 「이소라의 프로포즈」(KBS2), 황신혜가 진행하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MBC)가 30대 취향의 가수를 출연시키고 이 계층의 시청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진행 스타일을 굳혀 가고 있다. 올해의 MBC대학가요제의 캐치프레이즈 「77학번부터, 77년생까지」, MBC 창사 35주년 기념 「서른다섯살을 위한 음악회」도 같은 의도의 기획이다.
30대 시청자가 주요 타깃인 케이블 텔레비전은 공중파 방송의 「30대 끌어안기」의 원인 제공자이다. 「임백천 월드쇼」(현대방송), 「송지헌 토크쇼-사랑은 살아있다」(동아 TV) 등.
「아저씨 부대」가 만든 최근의 히트곡인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 100만장 이상 팔린 조관우의 앨범들,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등은 10대가 주축인 레코드 시장에서 30대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30대 정서는 30대 연예인의 「존재의 이유」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70년대 학번들의 스타 「산울림」의 김창완이 탤런트, 영화배우로 등장하더니 급기야 내년엔 「산울림」재기 앨범을 낸다. 80년대의 대학스타 「동물원」은 이미 재결성해 활동중. 허수경 최화정 최유라 등 「수다쟁이」 30대 여성 진행자들 모시기도 힘들다.
70년대말 프랑스 문화원을 부지런히 드나들며 영화 꿈을 키웠던 영화 소년·소녀들이 이제는 이론으로 무장,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김홍준 감독, 여균동 감독, 영화 평론가 정성일, 김소영 등. 「페드라」 「태양은 가득히」 등 고전 영화들이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예술영화관에서 재개봉되는 것도 30대 관객의 존재를 염두에 둔 것이다.
30대 끝인 전직 경찰관이 쓴 「아버지」, 12만 명의 관객이 몰린 연극 「늙은 창녀의 노래」, 고급 뮤지컬 「레 미제라블」 「브로드웨이 42번가」, 정동극장의 「정오의 클래식」. 이들 문화 상품의 주요 소비자들 역시 30대 회사원이나 주부이다.
신경숙, 최영미, 신현림 등 30대 여성작가들의 「사인적 세계 속에서 자아를 찾는」 시나 소설, 30대 작가 이순원이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는 소설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젊은 철학자 이주향 교수의 「나는 길들여지지 않는다」 등은 30대 정서가 독특하게 우러나는 작품.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어려운 문화 상품과 현상들. 이것들을 과연 「문화」란 이름으로 불러도 좋은 것일까. 과연 30대는 진정 이 흐름의 주역이기는 한 것일까.
무엇보다 명백한 점은 신세대 문화계층보다 30대의 주머니는 한결 넉넉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30대들이 이 문화 마케팅의 주역이자 고객이 된 바로 그 이유이다.
90년 초부터 몰아친 신세대 문화, 「X세대 마케팅」은 5년여가 지난 지금 용도폐기될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많다. 댄스나 힙합, 레게가 이제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는 데서 고민은 출발한다. 결국 이 시대의 문화 마케팅은 「진부해진 새로운 것」 대신 「새로운 진부한 것」을 찾아내, 그것을 30대에게 「추억」이란 이름, 혹은 「고전」이란 상표로 마케팅하고 있다.
주머니가 넉넉한 30대를 겨냥한 문화는 그만큼 더 부가가치적이며, 재생산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더욱이 「검약」을 미덕으로 알던 구세대와 구세대에 경제적으로 예속돼 있는 신세대와 달리 소비도 미덕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가치개념에 눈뜨기 시작한 30대들에겐 문화의 질이 중요하지, 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급문화 공간 「예술의 전당」의 주요 관객층이 30대라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정윤수씨는 『지금 30대가 향유하고 있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고 논박한다. 이들 30대를 관통하고 있는 일단의 흐름은 「보편과 특수」의 문화 논리가 전혀 개입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90년대를 살고 있는 각 세대들이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의 문제를 끌어내고, 그 문제에 대한 30대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진정 이 시대의 「정통 문화」라고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의 흐름은 문화가 아니다. 30대의 노래라는 이문세의 「조조할인」은 지극히 복고적 장단과 정서를 담고 있다. 「옛날이 좋았다, 그립다」식의 복고·회고적 논리는 유형화한 거짓 신화에 불과하다. 70·80년대의 기계적 리바이벌은 90년대 감상이상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문화를 통해 시대를 느끼고, 시대 아픔의 대안을 찾으려는 모색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문화가 아니다. 지금의 30대 문화도 「진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어차피 10대에게 넘어갈 문화 주도권을 잠시 보관하는 「정류장」 이상의 의미가 없다.
30대 문화활동이 신세대 문화시장의 성장이 정체한 「틈새 시장」으로서의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문화선언」이 되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은 여전히 「모색중」인 것 같다.<박은주 기자>박은주>
◎“386세대 다 모여라”/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모임 ‘열린 공간 30’/대학로에 카페열고 바람직한 문화모색
30대는 「낀」세대다. 20대와 40대 사이에서 엉거주춤 서성인다. 록카페를 기웃대다가는 문전박대당하기 쉽고, 노래방 반주에 맞춰 댄스음악이나 트로트를 불러 제끼기도 왠지 쑥스럽다.
30대 문화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90년대의 반환점을 돌면서 「없다」를 「없었다」로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뒷전에 밀려있던 30대들의 존재가 눈에 띈 것일까. 10, 20대의 거품을 알아챈 문화생산자들이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 「30대를 위하여」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내건 문화가 쏟아지고 있다.
가만히 앉은 채 「30대 문화상품」으로 이름 붙여진 것들을 뒤집어 쓰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능동적인 움직임이 있다. 적극적으로 30대 문화를 만들어 내려는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열린 공간 30」. 「386세대」가 만든 모임이다.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이라는 뜻이다. 발기 모임은 84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이정우(34·변호사)씨 등 80년대 학생운동의 주역들이 주축이었지만 이름 그대로 문은 열려 있다. 「386세대」는 물론이고 「297세대」도 좋고, 「475세대」도 말리지 않는다.
이들이 바로 얼마 전 대학로에 「동숭동에서」라는 카페를 열었다. 30대의 만남과 부대낌을 위한 공간이고 30대의 문화체험 공간이다. 부담없이 와서 맘껏 떠들 수 있는 장이다. 한달에 한번 가량 「젊은이의 관훈토론회」도 열고, 컴퓨터 통신에 독자적인 사이트도 만들 계획이다.
「동숭동에서」는 「30대 문화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바람직한 30대 문화의 모습이 그려질 캔버스는 아직 백지상태다. 혼돈에 빠져 정체성을 잃은 기성세대의 문화나, 말초적 감각에 끌려다니는 X세대의 문화는 아니라는 것만 분명히 할 뿐이다.
『선언은 않기로 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가장 바람직한 문화를 찾아 갈 것이다. 그것이 전통적인 것이 될 지, 서구적인 것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카페의 영업책임을 맡고 있는 황도순(33)씨의 말이다.
「열린 공간 30」의 감사를 맡고 있는 한창민(34)씨는 『오늘의 30대는 생물학적 연령만으로 나눠지는 것이 아니다. 80년대의 정치·사회적 경험을 함께 지닌 탓에 정서가 비슷하다. 주체적으로 30대의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본토양은 마련돼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동지가」를 부르며 80년대의 한복판을 걸어 온 이 땅의 30대. 이제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걸고 「30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첫 발을 내디뎠다.<최성욱 기자>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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