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서 치이고 합병설에 자리걱정「시중은행 차장들은 괴롭다」
사정한파로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은 시중은행의 차장들은 요즘 하루하루를 버텨내기가 힘들다. 은행원이 「신랑감 1위」였던 70년대 중반 은행에 들어와 20년이상 조직에 충성을 바쳤건만 갑자기 세월이 바뀌는 바람에 부하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걱정」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차장들의 걱정거리는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소문났던 은행들이 최근 경영혁신을 외치며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상사평가제」. 한일은행은 지난해부터 말단직원이 차장급까지 평가하는 「자기신고서 제도」를 도입, 상사평가제를 실시중이다. 보람은행과 서울은행도 일반 직원들에게 팀장 부장을 평가할 기회를 주고 있는데 다른 은행도 경쟁력 강화차원에서 도입을 준비중이다.
상사평가제는 조직의 언로를 터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도입과정에서 차장 등 중간관리자는 큰 고통을 겪게 된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황원일(29) 연구원은 『상사평가제가 실시되면 개성이 강한 신세대부하들은 차장을 가혹하게 평가하지만 차장들은 부장이나 이사에게 여전히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차장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공공연하게 나도는 은행간 합병설이다. 은행끼리 합병이 이뤄질 경우 25%가량은 감원이 돼야하는데 그 주요 대상이 차장급이기 때문이다. 부장을 거쳐 임원진급을 노리던 패기만만한 사람들이 졸지에 자리보존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 탓에 차장들은 동료끼리 모이면 자신들을 「샌드위치 세대」라고 자조하는가 하면 성격이 예민한 일부 차장들은 우울증이나 정신불안을 호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모시중은행의 홍보담당 차장은 『우리들(은행차장)은 대개 40대중반으로 6·25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은행에 들어와 고생끝에 차장까지 올라왔다』며 『솔직히 이제는 「자리덕」을 볼 위치라고 생각했는데 세월이 너무 변했다』고 말했다.
무한경쟁시대에 내몰린 은행차장들의 입에서 「아, 옛날이여」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시대다.<조철환 기자>조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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