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의 신념이 깨지며 뜨거운 관심을 끄는 정신세계/세기말적 징후인가 과학이 풀지못한 신비인가/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할 수 없지만/안보이는 것을 무작정 믿을수도 없는 그 불안한… 매혹의… 세계초자연 신드롬이 퍼져 나가고 있다.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점술이 몇몇 스타 무속인의 인기에 편승해 새로운 평가를 얻으면서 바람을 탔고 덩달아 역술에 대한 관심도 증폭했다. 최근에는 이에 덧붙여 전생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고 기 바람도 무섭게 번지고 있다.
특히 「전생 열풍」은 올 한해의 손꼽을 만한 사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세다. 영화 TV드라마 소설 음악 등 전생을 다룬 각종 상품들이 쏟아져 나와 붐을 일으켰다. 특히 전생과 환생이 사랑이라는 주제와 결합해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구」형태로 나타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런 흐름을 타고 전생을 상품화한 장사꾼들이 전생바람을 부채질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연과 일회성이 특징인 현대사회에 대한 혐오와 반발」이 전생바람의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으나 과학의 이름으로 전생의 존재를 입증하려는 시도까지 곁들여져 이 바람은 잦아들 기미가 없다.
또한 기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기 수련을 해 봤거나 하고 있는 사람이 200만명에 이르고 기수련 도장만도 1,000개를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학교나 입시학원에서 두뇌 개발과 정신 집중을 목적으로 기수련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기에 대한 관심은 주식 투자와 기업의 투자대상 선정 등에까지 활용되기에 이르렀다. 대학의 실험실에서 기 연구를 하는 곳도 생겨 났다.
마찬가지로 지기에 바탕한 풍수지리도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70년 3,000여명이던 지관이 현재는 2만여명으로 늘어 났다. 과거 묘터나 집터를 고르는데 활용되던 정도이던 것이 최근에는 「풍수 인테리어」 등으로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점술과 역술에 대한 관심도 식어 들 줄 모른다. 중고생부터 재벌그룹 총수, 대권 지망생까지 점술가와 역술가를 찾고 있고 전국 유명서점에는 역학 코너가 개설돼 다양한 예언서와 운명을 점치는 방법을 소개한 책들을 늘어 놓고 있다. 이름난 스타 점술가를 한번 만나려면 며칠에서 몇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스타 점술가들은 이제 떳떳한 직업인으로 자부하며 일부는 사회의 명사로 대접 받기도 한다.
최근의 초자연 신드롬은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초자연 현상에 대한 관심은 막연한 동경이나 경외심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다. 초자연현상을 탐구 대상으로 삼아 「과학」의 지위를 부여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학자들의 모임인 「한국정신과학학회」가 서양의 이원론적·기계론적 사고체계를 뛰어 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겠다는 의욕속에 올해 정식 발족했다. 이들은 이미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이고 있어 학계의 관심도 높다. 전생연구를 본격적으로 시도하는 의사들의 모임도 나타났다. 초자연현상이 주술이나 무속, 심령과학의 전유물이 아니라 정규과학의 한 분야로 진입하려고 하는 상황이다.
이같은 흐름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초자연 신드롬은 물질세계에서 정신세계로 이동하려는 새로운 흐름이며 논리와 증명을 앞세우다 벽에 부딪친 서구 합리주의가 낳은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흐름이 합리주의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확립하는데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낳고 있다.
또한 현재 국내에서 일고 있는 초자연 신드롬을 전세계적인 뉴 에이지(New Age) 운동의 일환으로 파악되기도 한다.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정신세계를 추구하려는 운동이다. 20여년전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정신수련과 명상을 수단으로 새로운 사상에 접근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러나 인간이 초자연 현상에 의존하려는 심리의 바탕에는 사회병리가 깔려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세기말적 불안과 물질적 풍요속의 정신적 빈곤, 가치관의 상실 등이 초래한 정신적 공백이 초자연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하는 근본 요인이라는 것이다.
초자연이 「과학」의 이름을 얻으려는 최근의 일부 시도는 이중적 혼란을 부채질할 뿐이라는 비판도 무성하다. 초자연에 대한 관심이 현대 과학과 물질문명이 야기한 환경오염, 자원고갈, 핵전쟁 위협, 기상 이변, 가치관 혼란 등 과학만능주의의 폐해에 대한 자각에 바탕한 「반과학」흐름이라면 초자연 현상 자체를 과학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은 곧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초자연 신드롬이 사이비 신앙 체계와 결합할 경우의 사회적 혼란이다. 이웃 일본에서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옴진리교의 중추간부들이 명문대 출신의 과학자들이었던 예는 타산지석이다. 정신적으로 공허한 사람들이 현실 도피의 방편으로 초자연에 경도할 때 현실과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허약하게 하고 사회를 더욱 황폐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초자연현상 탐구 모임들/“보이지 않는 곳에도 진리는 있다”/과학자·의사 등 학회 발족… 기·인간의 잠재능력 연구 활발
기존 정규과학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던 인간의 영적 능력과 초자연 현상에 대한 연구가 과학자와 의사 등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단법인 한국정신과학학회. 서울대 전자공학과 이충웅 교수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이 단체는 94년 4월 대덕연구단지 과학자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 올해 4월 현재의 이름으로 과학기술처에 등록했다. 대덕연구단지 인근에 본부를 두고 서울 등 6개 지부에 700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중 현직교수가 149명, 연구원이 133명 등이며 박사 195명 석사 89명 등 고학력자가 주축을 이루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참여대학이 45개에 연구소도 40개이다.
임성빈 명지대 공대학장, 박민용 연세대 전자공학과 교수, 정우일 원광대학교 한의대학장, 황준식 전 서울의대 교수, 하성한 삼성종합기술원 부원장 등이 임원진을 맡고있다.
이 학회의 목표는 기존의 과학에서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다양한 인간의 영적 능력과 초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사고체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을 개발한다는 것. 이를 위해 ▲전통사상 ▲생체 기과학 ▲시공간 기과학 ▲잠재능력 연구 등을 4개 기본 연구분야로 설정하고 있다.
학회 관계자는 『21세기에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능력의 개발과 자연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정신과학적 세계관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 학회는 이러한 변화에 대비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19일 연세대에서 연 5차 학술대회에서는 최면과 전생이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모임)」의 경우도 회원이 1,000여명이나 된다. 이 단체는 과학자 기자 주부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고 있으며 역시 정신세계와 무한한 잠재능력을 탐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8월에는 정신과 의사 10여명이 의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임상실험최면연구회」를 발족, 그동안 4차례 학술모임을 가졌다.<조재우 기자>조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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