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사는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정신없이 살아온 한 해를 돌아 보면서 새삼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에 비감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되풀이해 봐도 풀릴 것 같지 않은 이 질문을 미국인은 아주 쉽게 풀어 나간다.이를테면 『당신이 우리마을에서 이 다리를 스무살이 된 생일에 건넌 첫번째 인물』이라는 식이다. 동네사람들은 이를 기념한다면서 파티를 열고 이 청년의 생일을 박수 쳐 축하해 준다.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남보다 영민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일도 없고, 그렇다고 이웃을 위해 무슨 칭찬받을 일을 한 기억도 없는,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렇고 그런 인물의 이 청년은 갑자기 마을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존재감에 충일하게 된다.
청년은 이 일로 세상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이왕이면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다. 하루하루를 권태롭게 보내던 청년의 나태한 일상이 존재의 의미와 이타행을 생각할 줄 아는 삶으로 바뀌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당신이 태어난 날 세상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는 표제로 기념패를 만들어 파는 사업을 하고 있다. 가령 1945년 8월15일 태어난 사람의 생일을 이 기념패로 축하해 주고 싶다면 신문사에 주문만 하면 된다. 그의 생일 아침 일본천황의 무조건항복 기사가 실린 같은 날짜 뉴욕타임스 1면 복사판을 품위 있게 디자인한 기념패가 신문과 함께 배달되는 것이다.
자사 신문 애독자에 보답하는 뜻을 담은 일종의 서비스도 되고, 뉴욕타임스를 보지 않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독자 확보 수단이 되며, 기념패를 팔아 돈도 벌고, 신문의 전통과 권위를 선전하는 효과도 갖춘, 실로 「네마리 토끼 잡기」사업이라 할만하다. 이 일석사조사업 역시 미국인의 낙천적 사생관에 착안한 것임은 물론이다.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행정부 제2기 외교안보팀 지명에서도 미국인의 이런 장난 아닌 장난기가 느껴져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올브라이트 유엔대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국무장관이라는 영예를 안았고, 코언 공화당 상원의원은 의회출신 정치인으로는 첫번째 국방장관이 된다. 국방장관은 퇴역장군 아니면 관료 출신이 맡는 것이 상례였다. 클린턴 자신이 민주당대통령으로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이후 처음 재선에 성공했다.
그 정치적 의미를 보자면, 클린턴은 자기를 압도적으로 지지해 준 여성유권자에게 올브라이트 국무로 보답한 것이고, 코언국방의 기용에는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도록 투표한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뜻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성향 역시 정책가나 행정가라기 보다 정치인이다.
「세계의 대통령」으로서 21세기를 개막하게 되는 클린턴이 기댈 곳은 이들보다 오히려 스트로브 탤보트 국무부장관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는 클린턴과 같이 로즈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냉전과 군축문제를 연구한 러시아전문가다. 유학때 방도 함께 썼을 만큼 절친한 사이다.
그가 얼마전 국제정치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즈에 「민주주의의 본질과 미국외교」(Democracy and the National Interest)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민주국가끼리 전쟁을 벌인 경우가 희귀하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민주제도는 국제평화를 보장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경제번영은 평화적 환경이 그 밑거름이라고 할 때, 21세기 미국의 국익은 전제국가들의 통치형태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성공하느냐 여부에 걸려 있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 낙관적 선의는 믿어도 좋겠지만, 이 원칙이 실제로 북한에 어떻게 적용될 것이며, 우리의 입장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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