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형공장 3층에 우아한 근로자 카페/작은 발상 전환으로 3D구인난 이겨내2년전 연말 일본 도쿄(동경)에서의 일이다. 이마이 겐이치(금정현일) 교수가 이끄는 산업정책과 경영전략 연구회에서 특이하게 연말파티를 공장에서 연다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기사에게 약도를 보여주었는데도 쉽게 찾지 못하고 몇군데를 헤맨 이유는 그 지역이 도쿄 오타(대전)구의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공장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겨우 가까운 파출소에서 길을 물어 어느 공장 앞에 내리게 되었다. 서울 변두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삼층짜리 작은 금형제작공장이었다. 일층은 금형으로 판을 뜨고 다양한 철제 부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삼층에서 모임이 있다고 해서, 공장에 딸린 회의실인 줄 알고 삼층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잠시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곳은 칵테일 바처럼 꾸민 10여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카페처럼 소파가 배치되어 있었고 작은 스테이지 한쪽에는 드럼과 키보드 같은 악기들이 있었고 또한 가라오케 시설이 되어 있었다. 아래층의 공장이나 사무실과는 전혀 다른 우아한 분위기였다.
이마이교수의 소개로 인사를 한 그 공장의 사장은 자랑스럽게 자기 공장에 칵테일 바를 꾸미게 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 공장도 소위 3D 업종에 해당해서 일본의 젊은 사람들이 근무를 회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임금인상 등 여러 방법을 써보았지만 안정적으로 젊은 우수인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결국 그가 고안해낸 것이 공장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칵테일 바의 설치였다. 아무리 임금이 낮더라도 사무직이나 영업직을 선호하는 일본의 신세대를 붙잡기 위해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터전을 마련해주자는 발상이었다. 이 칵테일 바에서는 업무가 끝나면 드럼이나 키보드를 연주하기도 하며 가라오케로 노래를 즐기고 때로는 친구들을 초대하여 대기업의 임원들처럼 양주를 대접하기도 한다.
고급 카펫과 화려한 소파, 양주가 진열된 스탠드 바 등 내부시설 공사에 약 1,000만엔(약 7,450만원)이 투자되었다고 하면서 사장은 그 돈으로 고급 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보다 이것이 더 사업운영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사장은 술과 안주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사원들은 이 곳에서 취미활동을 즐긴다는 것이다.
연구회 회원들이 동남아와 중국의 경제진출과 일본의 대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연말 파티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한쪽에서는 이 공장의 직원들이 사장과 동등한 자격으로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즉 공장 근로자라는 인식이 근무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사라지고 사장, 임원, 근로자가 동등하게 술자리와 취미활동을 즐기는 것이다. 작은 발상의 전환이 3D 업종을 인기직장으로 탈바꿈시켜서 이 공장의 이직률은 매우 낮고 입사희망자도 줄을 잇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의 경우도 3D업종에 속한다는 이유로 직원채용이 매우 어렵다고 호소한다. 중소기업에서는 신세대들의 그릇된 의식을 탓하기도 하고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이나 정부의 중소기업 육성책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부당행위와 옌볜(연변) 중국교포 취업사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아직도 기술개발이나 산업구조조정 보다는 낮은 임금만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우리의 중소기업은 작업환경에 대한 인색한 투자와 저임금으로만 가격경쟁력을 유지해온 것은 아닌가?
이제 동남아와 중국의 적극적인 국제시장 진출 때문에 값싼 노동력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의 젊은 노동력이 중소제조업을 외면할 때, 단순히 임금 인상이나 값싼 노동력의 수입보다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낮은 노동조건에 대한 뿌리깊은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 선결과제는 아닐까? 삶의 질을 논의하는 21세기로 가는 길목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이야기 할 때마다 그 금형제작공장의 칵테일 바가 다시 떠오르곤 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