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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신격화·문란한 성생활에 신도들 염증”/신도 2명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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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 신격화·문란한 성생활에 신도들 염증”/신도 2명 일문일답

입력
1996.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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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해지면 안된다” 아이들 학교 못다니게87년 아들 최낙귀(당시 7세)군이 살해당한뒤 「아가동산」에서 빠져나온 최명호(40)씨와 안연옥(38·여)씨 등 2명은 『중노동을 강요당했고 교주의 뜻을 거역하면 구타·감금을 당하는 끔찍한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아가동산에 들어갔나.

『78, 79년에 전북 이리에서 김기순씨의 꼬임에 빠져 전재산을 헌납한 뒤 82년 정착하게 됐다. 당시 일반교회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가 김씨의 회유에 빠져들었다』

―아가동산에서의 집단생활은.

『성인신도는 협동농장과 카세트공장, 신나라레코드물류 등에서 무보수 노동을 강요당했다. 게으름을 피우면 창고나 돼지우리에 가두고 며칠씩 음식을 주지 않고, 각목으로 구타하기 일쑤였다. 아이들이 똑똑해지면 안된다며 학교에 못다니게 하거나 지정학교에만 다니게 했다』

―김씨는 어떤 교리로 신도들을 다스렸나.

『자신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다며 철저한 금욕과 절제된 생활을 강요했다. 신나라레코드의 「신나라」도 신의 나라라는 의미다』

―김씨에 대해 반감이 없었나.

『처음엔 일반교회처럼 성경봉독과 찬송을 하며 회유해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으나 81년부터 자신을 신격화하는데 혈안이 돼 반발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성생활이 문란한 김씨에게 염증을 느껴 농장을 빠져나가려는 신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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